보름 전쯤 동네 코스트코 주차장에서 작은 접촉사고를 냈다. 뒤에 장애물이 보이지 않아 후진했는데 어쩐 일인지 남의 차에 부딪쳤다. 경적소리에 깜짝 놀라 차를 세우고 뛰쳐나가서 봤더니 상대방 차 운전석 문짝에 흠집이 나 있었다. 육안으론 거의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미미했지만 상대방 운전자의 요구에 따라 일단 내 보험정보를 알려줬다.
그 후 한동안 기분이 찜찜했다. 사고 자체의 충격보다 노인처럼 후방경계를 소홀히 한 내 운전능력이 더 한심했다. 바로 일주일 전 LA에서 101세 노인이 초등학교 앞 인도로 캐딜락을 돌진시켜 어린이 10여명이 다치는 사고를 냈고, 그 사고를 계기로 노인들의 운전문제가 다시 사회이슈로 대두된 시점에 ‘7순노인’인 내가 사고를 냈기 때문이다.
‘전국 도로교통 안전청’(NHTSA)에 따르면 지난 2009년 65세 이상 노인 5,288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18만7,000여명이 다쳤다. 이는 교통사고 전체 사망자의 16%, 전체 부상자의 8%에 각각 해당한다. 한국에서도 2008~10년 65세 이상 운전자들이 34만 709건의 교통사고를 일으켜 1,688명이 사망하고 5만1,435명이 부상한 것으로 집계됐다.
요즘 미국에선 65세 노인이 매일 1만명씩 탄생한다. 자동차 보급률이 2명에 1대 꼴(9.000만대) 선으로 진입한 1960년대에 20~30대 청년이었던 운전자들이 지금은 70~80세 고령 운전자가 됐다. 오는 2030년엔 65세 이상 노인운전자가 5,200만명을 헤아릴 것으로 추정된다.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 4대 중 1대는 노인이 운전한다는 뜻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근래 인구 고령화현상이 급속히 진전되면서 지난 2005년 87만 5,000여명이었던 65세 이상 운전자들이 2010년엔 106만 1,000명으로 늘어났고, 오는 2020년엔 233만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노인운전은 고령에 따른 반사신경의 둔화 때문에 문제가 된다. 브레이크를 늦게 밟아 추돌사고를 내기 일쑤다. 위의 101세 노인처럼 엉겁결에 브레이크 대신 가속페달을 밟거나 고속도로를 거꾸로 주행해 대형사고를 내기도 한다. 그래서 일본처럼 노인이 80세가 되면 면허증을 자진 반납하도록 유도하거나 아예 말소시키는 방안이 거론된다.
하지만 사고율이 높다고 노인들이 정당하게 받은 면허증을 빼앗는 것은 엄연한 차별이요 불법이다. 그 대신 노인들의 면허갱신 주기를 단축하고 시력 등 건강검사를 강화한다. 일본은 노인(70세 이상) 차량에 실버마크(낙엽)를 의무적으로 부착시키고, 한국은 운전면허를 반납하는 노인들에게 택시요금 할인 등 혜택을 주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노인들이 스스로 운전대를 놓아야할지 여부를 판단하도록 미국 의학협회가 기준을 마련했다. ▲운전 중 자주 길을 잃고 ▲내가 운전대를 잡으면 남들이 동승하기를 꺼리며 ▲다른 차들이 과속하는 것처럼 보이고 ▲야간운전이 두려우며 ▲운전 후 피로감을 느끼고 ▲경찰에 정지 당하는 경우가 잦아지면 자동차 키를 포기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몇 년 전 직원회식에 참석하려고 옛 토다이 식당에 가다가 일방통행로가 복잡한 다운타운에서 거의 30분을 헤맨 끝에 기다리다 지친 직원이 달려와 대신 운전해준 적이 있다. 최근엔 친지 집에서 저녁을 먹은 후 귀가 도중 왔던 길을 되짚어 가지 못하고 한참 헤맸다. 아내도 동승할 때마다 잔소리가 늘어난다. 키를 포기할 때가 된 듯해 서글퍼진다.
하지만 안심되는 면도 있다. 산행 길에선 GPS 없이 디렉션만으로도 등산로 주차장을 정확하게 찾아간다. 장거리 산행 때는 반나절을 운전하지만 거뜬하다. 지난번 코스트코 사고도 내 실수가 아니라고 목격자가 자진해서 증언해줬다. 내 차가 후진하는 것을 보고도 상대방 차가 진입했다는 것이다. 아직은 더 운전해도 문제없다고 스스로 위로한다.
윤여춘
시애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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