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실에서 만나는 부모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아무리 들어도 끝없이 이어지곤 한다. 대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운을 떼는 수준에서 그치고 그 이야기의 배경이나 이와 관련된 일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카운슬러는 이야기를 적당한 선에서 끊고 주제에 접근해 보려고 하지만 이야기를 하는 엄마는 막무가내로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하다가 엉뚱하게도 남편에 대한 섭섭함으로 이어지기 도 한다.

때로는 상담을 하러 온 부모가 전문가들이나 할 수 있는 진단을 ‘자신 있게’ 내리는 예도 있다. 예를 들면 “우리 아이가 ADHD이다” “지능이 낮아 장애아 기질이 있다”는 등으로 듣다보면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하기는 요즈음 같은 정보시대에 웬만한 학부모는 자신이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아이에게 공부는 ‘이렇게’ 하는 것이고 행동은 ‘이래야 한다’ 는 등의 조언과 요구를 하기도 한다. 다행히 아이가 그 부모의 기대나 요구에 부응하면 별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못할 때 부모나 아이 모두가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이때 부모의 입에서는 부정적 평가가 내려지면서 부지불식간에 아이에게 낙인을 찍는다.

“너 바보냐?”

충격적이거나 섭섭한 말은 마음속에 오래 남게 마련이다. 그런 말을 한 사람이 부모나 교사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 까닭에 이렇게 한번 낙인이 찍히고 나면 아이 대부분은 섭섭한 마음을 갖고 ‘낙인찍힌 대로’ 행동을 하려 한다는 이론이 바로 1960년대에 등장한 ‘낙인이론(theory of Labeling)’이다. 속칭 ‘딱지’가 붙는다는 말인데, 예컨대 부모나 교사로부터 ‘개구쟁이’로 딱지가 붙은 아이는 계속해서 개구쟁이 노릇을 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요즈음 신문에 오르내리는 학교폭력이라든지 따돌림(왕따) 등과 같은 문제행동 역시 낙인이론과 무관하지 않다. 낙인의 문제는 한번 ‘찍히면’ 잘 지워지지 않으며 주변 사람들이 그 낙인을 오래오래 기억한다는데 있다. 그래서 수십년 만에 친구를 만나면 이름 보다 당시에 찍힌 낙인으로 친구를 알아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처럼 한번 찍힌 낙인은 오래 자리를 잡고 있어 아이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기 십상이다. 상처 입은 자존심을 회복시킨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부모나 교사의 사랑으로 아이의 자존심을 회복시켜 줄 수만 있다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전화위복의 계기는 인간의 심리적 특성에서 찾을 수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특히 청소년들은 부모나 선생님으로부터 인정을 받고자하는 욕구 때문에 은연 중에 부모가 바라거나 기대하는 행동을 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때 부모는 자녀의 눈높이에 맞추어 선택과 집중을 통해서 바람직한 행동을 하도록 이끌어 주고 자녀의 성취에 대해 인정과 격려를 해서 자부심을 느끼도록 도와준다면 낙인 때문에 받은 마음의 상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인정과 격려, 쉽고도 어려운 일이지만 낙인으로 상처받은 아이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명약이다.


<이규성 가정상담소 프로그램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