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너(Runner)에게 훈련하기에 제일 힘든 계절은 겨울이다. 찬바람 소리가 쌩쌩 나고 바깥이 캄캄하면 아침에 따뜻한 이불을 박차고 뛰어나가는 것이, 나 같은 베테랑 러너에게도 매번 큰 도전이다.
얼마 전에 40대 후반 남자의 마라톤에 관한 기사를 우연히 읽게 되었다. 이 사람은 20대 초반서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뛰었다고 한다. 심지어는 결혼하는 아침에도 뛰었고, 첫애가 출산했을 때, 아버지의 장례식, 허리케인이 오는 날을 비롯하여 여름에 기온이 화씨 100도가 넘었을 때도 뛸 정도의 매니아였는데, 이 사람이 한말이 감동적이었다.
“To be a true runner, you have to be weather-blind.” 직역을 하면, ‘진정한 러너가 되기 위해서는, 날씨에 장님이 되어야 한다’ 는 것이다.
내가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느낀 점은 많은 러너들이 지나치게 날씨에 예민하다는 것이다. 비가 올 때는 감기 들까봐, 눈이 올 때나 얼음이 얼 때는 미끄러질까봐, 더울 때는 더위를 먹을까봐, 이렇게 날씨에 너무 민감하다 보면 하와이나 샌디애고에 살지 않는 한 뛸 날이 많지 않다.
나는 주위사람이 미련하다고 할 만큼 악천후에서도 뛰고, 또 그런 날씨에 뛰는 것을 더 선호한다. 작년에 친구아들이 시카고에서 결혼식을 올린다고 하여 시카고를 방문했다.
3월 중순이라 뛰는 장비에 신경을 쓰지 않고 가볍게 준비하고 갔는데 의외로 아침에 바람이 불고 수은주가 영하로 떨어지는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이 주말은 봄 마라톤을 앞두고 마지막 롱 런 트레이닝 계획이 잡혀있었다. 옷을 대충 입고, 손은 장갑대신 양말로 싸매었으나 귀가 문제였다.
16마일을 뛰기로 작정하고 미시간 호수를 따라서 올라가는데 의외로 참을만하였다. 8마일 지점에서 돌아오는데, 아뿔사 맞바람을 맞으며 뛰니, 두배 세배로 힘든 것이었다. 더욱이 귀뺨마저 얼어붙으니, 4-5분마다 쉬면서 손과 귀를 마사지 해주어야 했다.
갈 길은 아직도 먼데, 돈도 없는데 택시를 탈 수도 없고, 길거리에서 뛰자니 잘못하면 길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온길을 되돌아가야 하는데 미시간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그렇게 매서울 줄이야.
귀와 손이 동상이 날 정도로 얼어붙는것 같았고, 몸이 맞바람 때문에 전진이 안 되는 것이다. 1/2마일마다 서서 손과 귀를 주무르면서 뛰다 걷다하며 8마일 정도 밖에 안 되는 거리를 2시간 걸려서 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몸은 얼어붙었고 기진맥진 하였지만 마음은 날아갈 것 같았다.
미국 마라톤계의 대부였던 시한 박사가 한 말이 생각난다. “현대문명의 편한 생활을 하는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에게 도전을 해서 희열을 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나에게는 뛰는 것이 그러한 도전과 희열을 주는 것 같다.
우리 속담에 ‘고진감래’라고 좋은 날씨에 뛰는 것도 물론 기분 좋지만, 악천후에서 뛰는 것은 몇배로 성취감과 상쾌함을 주는 것 같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