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연말이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하는 일이 있었다. 크리스마스카드나 연하장을 보내는 일이었다.
특히 고향에서 멀리 떠나있는 미주한인들에게 카드는 특별한 의미를 가졌다. 평소에는 바빠서 안부를 전하지 못하다가 1년에 한번 연말이면 카드로 인사를 하는 것이 연례행사였다. 카드를 몇 박스씩 사놓고, 카드 보낼 명단을 정리한 후 한 장 한 장 쓰다보면 옛 추억에 잠기며 정감이 되살아나곤 했다. 그리고는 팔 아프게 쓴 카드를 한보따리 들고 우체국에 가서 부치고 나면 뭔가 대단한 일을 해낸 듯한 뿌듯함이 있었다.
이제 그런 전통이 사라진 것일까? 올해는 크리스마스카드를 한 장도 받지 못했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럼 (당신은) 카드를 몇 장 보냈느냐?”고 물으면 “한 장도 안 보냈다”는 답이 돌아오곤 한다. 크리스마스에 카드를 보내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카드가 얼마나 줄었는 지 피부로 느끼는 사람들은 우정국 직원들이다. 12월 들어서면 우정국 직원들은 밀려드는 우편물에 정신을 못 차리곤 했었다. 이제 그것은 옛말이 되고 있다. 선물 꾸러미들인 소포는 연말을 맞아 많이 늘었지만 카드는 현격하게 줄었다.
크리스마스카드는 매해 꾸준하게 늘어나는 것이 정상이었다. 사람이 늘수록 카드 보내는 사람도 늘어나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난 2006년 최고치에 도달한 후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후 최소한 25%가 줄었다고 하니 엄청난 양이다. 연방 우정국이 재정난을 겪지 않을 수가 없다.
카드를 더 이상 보내지 않으면서 집안 풍경도 바뀌었다. 연중 이맘때면 벽난로 위 선반이나 거실의 벽 혹은 현관 입구는 으레 알록달록한 카드들로 장식이 되곤 했다. 이제는 카드의 절대량이 부족해서 전처럼 진열해놓을 수가 없는 가정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카드가 줄어든 것은 물론 세상이 바뀐 때문이다. 인터넷 세상이 되어 종이 카드가 뒤로 밀려났다. E-카드 쓰면 편리하고 돈도 안 드는 데 굳이 종이 카드를 쓸 필요가 있겠느냐는 생각들이다. 종이 카드를 보내려면 카드 값에 우표 값 합쳐서 적어도 1~2달러. 요즘처럼 경제적으로 어려운 때에 한두장도 아니고 여러 장을 보내려면 그것도 부담이 된다.
그리고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소셜네트웍. 한국에 사는 친구, 동부에 사는 자녀들 할 것 없이 페이스북이며 카카오톡으로 하루에도 여러 번씩 소식을 주고받으니 크리스마스라고 새삼 안부를 전할 것도 없게 되었다. 아침식사로 뭘 먹었고 샤핑 가서 얼마짜리를 얼마에 샀는지 등 그날그날의 일을 시시콜콜 나누는 세상에 “올 한해도 ~” 식의 인사는 어울리지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이 카드를 고집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종이 카드를 보낸다. 우편으로 배달된 카드를 손으로 잡을 때의 감촉, 친필로 쓴 인사말을 읽으면서 느끼는 따뜻한 정은 E- 카드로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 우편으로 받는 것은 고지서 아니면 정크메일인 데 그 속에서 카드를 발견할 때의 기쁨은 그만큼 특별하다는 것이다.
올 연말 종이카드를 받았다면 보낸 사람의 정성에 배로 감사할 필요가 있다. 종이카드는 멸종위기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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