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준(75) 국무총리 지명자가 제18대 대통령 인수 위원회 사무실 앞에 서있다. <연 합 >
김용준(75) 국무총리 지명자는 소아마비를 딛고 헌법재판소장까지 오른 `감동 스토리’의 주인공이 자 장애인들의 살` 아있는 신화’로 통한다.
또 겸손하고 성실한 성품으로 법조계의 신망을 받아온 인물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총리로 직행하는 기록도 세웠다. 김 지명자는 3살 때 소아마미를 앓아 지체장애 2급 판정을 받았고, 이 때문에 어머니 등에 업혀 등교할 정도로 어려운 학창시절을 보냈다. 6ㆍ25 당시 부친이 납북되는 바람에 편모 슬하 에서 성장했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희망하 던 경기고 진학이 좌절되는 설움도 겪었다. 하지만 학업의 끈을 놓지 않은 그는 서울고 2학 년 재학 중 검정고시를 거쳐 서울대 법대에 입학 했고, 대학 3학년 때인 만 19세에 고등고시(현 사 법고시)에 수석합격, 1960년 최연소 판사로 법조계 에 발을 내디뎠다.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만약 법관이 된다면 독점 기업 등 강자의 횡포로부터 보다 많은 약자를 돕는 데 애쓰겠다”는 포부를 밝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김 지명자는 서울가정법원, 광주고법, 서울고법 등에서의 부장판사 생활과 서울가정법원장을 거쳐 지체장애인으로서는 최초로 1988년 대법관에 임명 됐고 1994년 제2대 헌법재판소 소장에 올랐다.
법관 시절 그는 후배 법관들에게 “법조문에 얽 매이지 말고 구체적 타당성에 입각해 판결하라”며 실정법과 현실 간 괴리를 메울 현실적 합리성을 갖출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1994년 10여년 간 계속된 생수 논쟁에 종지부 를 찍고 생수시판을 허용하는 판결을 내린 것은 이런 법철학이 반영된 대표적인 판결이다.
그는 이 판결을 내리기 위해 1년여 간 생수사업자와 소비 자들을 직접 만나는 등 `발로 뛰는 재판’을 했다. 판사 시절 박정희 정권의 지향점과 상반되는 판 결을 다수 내리는 소` 신 판결’로 후배 법관들의 사 표로 인정받았다. 그는 1963년 당시 박정희 대통 령 권한대행의 대선 출마를 반대하는 글을 썼다 는 이유로 구속된 송요찬 전 육참총장을 구속적부 심에서 석방하기도 했다.
헌법재판소장 재임 중 과외금지 사건, 군제대자 가산점제, 택시소유상한제, 동성동본 금혼 조항에 대한 위헌 결정을 내리는 등 국민 기본권 침해에 대한 각종 제한을 철폐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김 지명자는 헌법재판소장에서 물러난 후에도 법무법인 율촌 상임고문, 헌법재판소 자문위원장, 대검찰청 공안자문위원장, 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 등을 지내는 등 왕성한 사회활동을 해왔다. 법무 법인 넥서스에 `고문’으로 적을 두고 있다.
김 지명자는 그동안 정치권과 거리를 둬왔으나 작년 대선 때 박근혜 대선후보 중앙선대위의 공동 선대위원장을 맡았고, 대선 후에는 대통령직인수 위원장을 수행해 왔다. 부인 서채원 씨는 이대 재학중 메이퀸 선발대회 학과 대표로 뽑히기도 했다.
▲서울(75) ▲서울대 법대 ▲고등고시 9회 ▲서 울가정법원장 ▲대법관 ▲헌법재판소장 ▲사회복지 공동모금회 회장 ▲법무법인 넥서스 고문 ▲새누리 당 중앙선대위 공동위원장 ▲제18대 대통령직인수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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