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DC 연방 의사당 앞 광장이 지난 주 또 100여만 인파로 뒤덮였다. 한인들도 적지 않게 보였다. 그보다 며칠 전 같은 장소에서 있었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취임식에는 80여만명이 운집했었다. 물론 취임식이 재연된 건 아니다. 집회 분위기도 박수와 환호로 들떴던 취임식과 달리 시종 울음과 절규의 함성이 뒤범벅돼 거대한 장례식장처럼 무거웠다.
이날 집회주제는 오바마를 축하하는 ‘4 More Years’(4년 더)가 아니라 ‘Cry4Life’(생명을 위한 통곡)이었다. 참가자들은 낙태를 불법화해 매년 태어나지도 못하고 짧은 생을 마감하는 100여만명의 생명을 구하라며 울부짖었다.
미국은 지난 주간 오바마 취임보다 낙태문제로 더 떠들썩했다. 낙태반대 시위가 전국 주요도시마다 꼬리를 이었다. 미국이 낙태를 합법화한지 꼭 40주년을 맞은 주간이었기 때문이다. 연방대법원은 1973년 1월23일 소위 ‘로 대 웨이드(Roe v. Wade)’로 불리는 소송 케이스에서 ‘역사적’ 또는 ‘기념비적’이라는 표현이 붙는 낙태 합법화 판결을 내렸다.
‘Roe’는 여성원고의 법정가명이었고 실명은 노마 맥코비이다. 달라스의 직장여성이었던 그녀는 1969년 원치 않는 세 번째 아기를 임신하자 불량배들에게 윤간 당했다는 거짓말로 낙태시술을 받으려다가 실패했다. 당시 텍사스 주법은 강간으로 임신했을 경우 낙태를 허용했지만, 강간을 뒷받침할 증빙서류가 없었다. 경찰에 신고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맥코비 여인은 여 변호사 2명을 고용한 후 헌법이 보장한 사생활 권리를 내세워 주정부를 제소했다. 정부 측 피고는 달라스 카운티의 헨리 웨이드 검사장이었다. 이 케이스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집단소송으로 발전해 연방대법원에까지 올라갔고, 대법원은 고심 끝에 임신기간을 기준으로 하는 소위 ‘3분기 원칙’의 낙태 합법판결을 7-2 표결로 확정했다.
명성 높은 메이요 병원(미네소타) 의사 출신인 해리 블랙먼 대법관이 쓴 판결문은 태아의 독자적 생존가능성이 희박한 임신 첫 3개월간은 산모의 낙태선택권을 우선 존중하고, 두 번째 3개월은 산모의 건강 등 상황을 종합적으로 참작해 낙태를 제한하되 금지할 수는 없으며, 태아의 독자적 생존 가능성이 높은 마지막 3개월은 낙태를 불허토록 하고 있다.
연방대법원의 ‘역사적’ 판결을 바탕으로 주정부들이 속속 낙태를 합법화했고, 그 후 40년이 흐르는 동안 전국에서 5,400만명의 아기가 낙태 제물이 됐다. 연방당국 통계에 따르면 작년 한해에만 82만5,564건의 낙태시술이 이뤄졌다.
예전엔 뒷골목 낙태수술이 합법적이었다. 인권을 보장한 연방헌법이 제정됐을 당시에도 낙태수술 광고가 횡행했다. 1800년대 중반 이후 낙태가 불법화된 배경에는 돌팔이로부터 ‘밥그릇’을 지키려는 의사들의 입김이 작용했다거나, 낙태가 만연돼 후속 타민족 이민자에게 수적으로 밀릴 것을 우려한 앵글로-색슨 터줏대감들의 고육지책이라는 설도 있다.
어쨌거나 연방대법원 판결은 미 국민을 ‘선택권’(Pro-Choice)파와 ‘생명권’(Pro-Life)파로 철저하게 갈라놓았다. 매년 이맘때 한바탕 대 결전이 벌어진다. 선택권파와 생명권파는 영원히 만날 수없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그런데, 문제의 맥코비 여인은 32년 만에 선택권파에서 생명권파로 전향했다. 그녀는 낙태 후 심한 가책을 받았다며 2005년 대법원에 판결취소 소송을 냈다. 마침 한국에서는 왕년의 인기가수 윤복희가 “젊어서 임신만 하면 낙태했다”고 털어놓고 낙태의 폐해를 역설했다. 생명은 창조도, 소멸도 피조물인 인간이 넘볼 수 없는 신의 영역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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