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자들이여, 이 세상 소리 가운데
밥상 위에 놓이는 수저 소리보다 아름다운 것 또 있겠는가
아침마다 사람들은 문밖에서 깨어나
풀잎들에게 맡겨둔 햇살을 되찾아 오지만
이미 초록이 마셔버린 오전의 햇살을 빼앗을 수 없어
아낙들은 끼니마다 도마 위에 풀뿌리를 자른다
靑果시장에 쏟아진 여름이 다발로 묶여와
풋나물 무치는 주부들의 손에서 베어지는 여름
採根의 저 아름다운 살생으로 사람들은 오늘도
저녁으로 걸어가고
푸른 시금치 몇 잎으로 싱싱해진 밤을
아이들 이름 불러 처마 아래 누인다
아무것도 탓하지 않고
전신을 내려놓는 빗방울처럼
주홍빛 가슴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未完이 슬픔이 될 수 없다
산 자들이여, 이 세상 소리 가운데
밥솥에 물 끓는 소리보다 아름다운 것 또 있겠는가
이기철 (1943-) ‘밥상’ 전문
어디선가 밥솥에 물 끓는 소리가 들리는 저녁, 풋나물을 다듬는 아낙들의 모습을 생각하며 시인은 깨닫는다. 소박하게 먹고 사는 일이란 참으로 아름다운 살생이란 것을. 풀꽃이 햇살을 받아들이듯, 한 마리 벌이 꿀을 마시듯, 푸른 시금치 몇 잎으로 싱싱해진 착한 식탁. 가만히 숟가락 놓이는 소리와 함께 순한 욕망들이 서로를 맞이하는 아름다운 채근의 저녁이다.
임혜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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