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대 임신 예방책 둘러싸고 교육계-학부모 오랜 논쟁 주법·교육구 지침 따라 전국 학교의 절반은‘배포금지’ 정부‘처방전 없이 구입’에 연령제한 없애 새 전기 맞아
브루클린의 에이브러햄 링컨 하이스쿨 재학생인 A양(16)은 올해 초 보건교사를 찾아갔다. 머리나 배가 아파서가 아니라 사후피임약인‘플랜 B 원스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피임약을 얻으러 양호실을 방문하는 것이 쑥스럽긴 했지만‘임신 공포’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덜컥 임신이라도 하게 되면 그녀의 꿈과 미래는 신기루처럼 증발해 버리고 만다. 고집 센 남자친구는 학교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콘돔을 사용하지 않았다. 남친이‘사전예방’을 소홀히 하는 바람에 결국 A양이‘사후처리’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양호실에서 플랜 B를 구하기는 생각보다 훨씬 쉬웠다.
보건교사는 ‘어젯밤 일’에 대해 전혀 묻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A양의 체중을 재고 혈압을 측정한 후 의사에게 전화를 걸어 피임약을 주어도 괜찮은지 여부를 확인했다. 의사는 보건교사가 전달한 A양의 체중과 혈압 측정치를 살펴본 후 즉석에서 피임약 제공을 승인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A양의 신상정보는 건네지지 않았다.
의사의 승인을 얻는 보건교사는 정해진 절차에 따라 A양의 보호자가 사후피임약 제공에 대한 사전거부 의향서를 보냈는지를 확인했다.
물론 문서함 파일에는 A양 보호자의 서명이 담긴 사전거부 의향서가 없었다. 있을 턱이 없었다. A양은 부모님에게 서식용지를 전달조차 하지 않았다. 그녀의 어머니는 학교에서 사후 피임약을 나눠준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른다.
보호자의 거부 의향서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보건교사는 A양에게 한 잔의 물과 함께 플랜 B를 건네준 후 자신이 지켜보는 앞에서 삼키도록 했다. 그것이 전부였다. ‘목적’을 달성하고 양호실을 나올 때까지 걸린 시간은 채 10분도 안됐다.
다소 쑥스러웠던 첫 번째 양호실 방문 이후 A양은 플랜 B를 얻기 위해 이제까지 두 차례 더 보건교사를 찾아갔다. 철저한 비밀이 보장되기 때문에 행여 부모님이나 친구들이 알게 될까 눈치를 살필 필요도 없었고, 보건교사의 ‘잔소리’도 없었다.
필요할 때마다 플랜 B를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A양은 더 이상 남자 친구에게 콘돔 사용을 강요하지 않았다.
A양이 다니는 에이브러햄 링컨 하이를 비롯한 뉴욕시의 50여개 고등학교는 비상피임약인 플랜 B 원스텝을 무료로 제공한다. 이들 대부분의 학교들은 10대 임신율이 가장 높은 지역에 속해 있다.
1개월 전 오바마 행정부는 기존 정책을 뒤집고 모든 연령층의 여성이 처방전 없이 사후피임약인 플랜 B 원스텝을 구입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 이전까지는 17세 이상이어야만 처방전 없이 플랜 B 구입이 가능했다.
그러나 이 방면에서 뉴욕시는 ‘선구자’였다. 벌써 몇 년 전부터 뉴욕시는 양호실과 교내 보건소를 통해 13~14세 소녀들에게까지 플랜 B를 처방전 없이 무료로 제공해 왔다.
이용자 수도 만만치 않다. 뉴욕시 보건 및 정신위생국 자료에 따르면 2011~2012학사년도에만 약 5,500명의 틴에이저가 최소한 한 차례 이상 학교 양호실이나 교내 보건소에서 플랜 B를 받았다.
20년 전 뉴욕시의 모든 학교에서 부모의 사전 동의 없이 학생들에게 무료로 콘돔을 배부한다는 결정이 내려진 뒤 조셉 P. 페르난데즈 교육감은 벌떼처럼 들고 일어난 성난 학부모들에 의해 일자리를 잃고 말았다.
그러나 현재 뉴욕시 교육구 감독권은 마이클 블룸버그 시장이 움켜쥐고 있다. 시 정부는 과거와 달리 공개적인 토론절차를 거치지 않고 플랜 B 무료 제공과 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
현재 무료로 플랜 B를 나누어주고 있는 뉴욕시 50여개 학교 가운데 13개교는 이른바 학부모 사전 거부제를 도입해 행여 있을지 모를 반발에 대비한 방어막을 설정했다.
시정부의 결정 자체를 뒤집을 수는 없지만 만일 자신의 딸이 학교에서 플랜 B에 접근할 수 없도록 차단하고 싶다면 사전 거부의향서에 서명해 제출하면 된다.
문제는 거부의향서 양식을 학생을 통해 배부하기 때문에 ‘배달사고’가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는 점이다.
학부모나 다른 후견인의 서명이 담긴 사전 거부의향서가 접수되지 않을 경우 학교 측은 해당 학생의 보호자가 사전 동의를 한 것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중간 전달자인 학생이 거부의향서 양식을 보호자에게 전달하지 않고 중간에서 가로채면 A양의 경우처럼 부모 모르게 학교에서 플랜 B를 받을 수 있다.
물론 시 정부는 우편으로 이들 13개 학교의 학부모들에게 플랜 B에 관해 알리는 우편물을 발송하고 학교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과 사친회(PTA) 모임을 통해 홍보를 하는 등 추가 조치를 취하곤 있지만 사전 거부의향서 접수율은 고작 3%에 불과하다.
반면 플랜 B 프로그램에 참여중인 50여개 학교 가운데 나머지 40개 학교는 부모의 동의 없이 교내 보건소에서 피임약을 제공한다.
플랜 B 교내 무료 배부는 뉴욕시 외에 시카고, 캘리포니아주의 오클랜드 등지에서 시행되고 있고 콜로라도에서는 주 전역에 걸쳐 실시된다.
전국적으로 보면 전체 학교의 절반가량은 자체 규정이나 교육구 지침, 혹은 관련 주법 등에 의해 양호실이나 교내 보건소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피임약이나 콘돔을 비롯한 피임기구를 배부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학교 내 피임수단 제공은 찬반론이 첨예하게 맞서는 예민한 이슈다.
비판적인 쪽에서는 이같은 조치가 청소년들의 무분별한 섹스를 장려한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제도 자체를 완전히 폐지하지 못한다면 최소한 이 문제에 대한 학부모의 발언권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부모의 동의 절차조차 제대로 거치지 않고 미성년자에게 피임약과 기구를 나눠주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논리다.
이에 맞서 지지론자들은 현실적인 측면에서 청소년들의 자발적인 절제와 자제에 의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고, 그냥 놓아두기에는 10대 임신의 위험과 이에 따른 결과가 너무 엄청나다고 반박한다. 현실을 외면한 당위론은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악화시킨다는 주장이다.
통계상으로 보면 양측이 주장은 모두 ‘절반의 진실’이다.
통계치는 물론 이제까지 나온 과학적 증거도 플랜 B 무료 제공이 반대론자들의 주장처럼 청소년들의 성적활동을 부추기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10대 임신율을 줄이는데 기여하지도 못했다.
여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학교 보건소가 연중무휴로 늘 개방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방학동안 ‘사고’를 치면 비상수단을 취하기 어렵다.
플랜 B 사용 후 얼마 안 돼 또다시 예방조치 없이 섹스를 한 후 ‘설마’하는 마음에서, 혹은 벼룩이도 낯짝이 있다고 무안스런 마음에서 보건교사를 찾지 않았다가, 그것도 아니면 ‘깜빡 잊고’ 사후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가 원치 않는 결과를 맞기도 한다.
어쨌건 이번 오바마 행정부의 플랜 B 제한 해제로 ‘피임환경’은 큰 변화를 맞게 됐다. 연령제한 없이 누구나 처방전 없이 사후피임약을 구할 수 있게 됐으니 학교 차원의 플랜 B 무료 배포는 ‘철 지난 이슈’가 된 셈이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