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사에 심술, 가구 부수고 간병인·이웃 환자에 주먹질 가족들 초긴장 상태…어쩔수 없이 약물로 통제하기도
■ 60년 동고동락한 에델스타인 부부의 고통필리스 에델스타인은 지난 5년을 남편 리처드(82)의 뒷바라지에 쏟아 부었다. 치매가 진행 중인 남편을 돌본다는 것이 결코 간단하고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필리스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적어도 리처드의 병구완을 도와줄 동거 커플을 고용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남편의 치매증상은 지난 가을부터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정신의 기울기가 심해지면서 매사에 심술을 부렸다. 예전의 호탕하고 넉넉하며 자상했던 남편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보는 눈만 없다면 수시로 쥐어박고 싶을 만큼 밉살스러워진 리처드는 특히 샤워를 싫어했다. 이 때문에 샤워를 시킬 때마다 필리스와 주말 간병인 부부는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 했다. 그는 눈앞에서 벌통을 빼앗긴 곰처럼 사납게 굴었다. 툭하면 화를 냈고, 욕설을 퍼부어댔다. 기억의 퇴화에도 불구하고 낯 뜨거운 욕지거리는 그의 머릿속에 고스란히 갈무리되어 있는 듯 했다.
폭력을 휘두르는 횟수도 점점 잦아졌다.
간병인 커플에게 주먹질을 해 필리스의 애간장을 태우더니 최근엔 서부극을 보다가 화면 속의 악당을 물리치기라도 하듯 TV를 향해 돌진했다. 그런 그의 모습은 풍차를 보고 덤벼드는 돈키호테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남편의 상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필리스는 그와 단 둘이 지내는 것이 은근히 부담스러워졌다. 그의 돌발적인 폭력에 언제 어떻게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의 농도가 시간이 지날수록 짙어져갔다. 리처드는 예전의 미더운 남편이 아니라 두렵고 무서운 ‘타인’이었다.
인지력에 이상을 일으킨 사이코패스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더 이상 그를 곁에 둘 수 없는 한계상황에 도달했다고 판단한 필리스는 지난 1월 남편을 집 근처의 양호시설에 입주시켰다. 한 차례 다른 입주환자에 폭행을 가해 문제를 일으킨 것을 제외하면 그는 성공적으로 양호원에 정착하는 듯싶었다.
그러나 지난 4월 그는 대폭발을 일으켰다. 화분을 닥치는 대로 박살내고 가구를 뒤집어엎었으며 장롱 문짝을 뜯어냈다.
검사 결과 그는 요도관 감염을 일으킨 것으로 드러났다. 요도관 감염에 걸린 치매 환자가 공격적이거나 기이한 행동을 취하는 것은 이미 오래 전에 알려진 사실이다.
요도관 감염은 치료됐지만 그의 공격성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는 지금 병원 정신과 병동에서 약 기운에 눌려 지낸다. 의사들은 리처드를 진정시키기 위해 약물치료에 의존하면서도 지나친 투약으로 그가 가수면 상태로 빠져드는 것을 막기 위해 애쓰고 있다.
지난해 독일에서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양호원 환자의 29%는 공격적인 행동을 취한다. 이로 인해 가장 큰 위험에 처하는 사람은 본인과 간병인이다.
그렇다고 주택가에 들어선 양호시설에 겁을 집어먹을 필요는 없다. 수년 전 미네소타의 몇몇 주민들은 난폭한 이상행동 증상을 보이는 치매노인들이 집단으로 양호시설에서 뛰쳐나와 행인들을 상대로 난동을 피울 가능성이 있다며 시설 이전을 요구한 적도 있다.
이런 두려움은 분명 비이성적인 것이지만 가족들이 느끼는 위협은 대단히 현실적이다.
일반적으로 치매환자는 자신의 가족에게 의도적으로 해를 끼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의 인지기능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이런 상태에서 심한 혼란이 찾아온다거나 분노나 고통에 처하게 되면 닥치는 대로 주변인을 걷어차고, 때리고 물고, 집어던지거나 떠미는 난폭한 행위를 할 수 있다.
3년 전 미네소타에서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조라는 이름의 한 남성은 마치 누구에게 쫓기는 것처럼 늘 불안스러워하고 매사 저항적이 되어가더니 얼마 전부터 장전한 권총을 지니고 다니기 시작했다. 심지어 잘 때에도 탄창을 끼워둔 권총을 그의 머리맡에 두었다.
그의 가족이 얼마나 불안했을지 상상하고도 남는다. 결국 아내와 아들은 의사의 거듭된 권유를 받아들여 조가 소지하고 있던 세 정의 권총을 몰래 치워버렸다.
미 알츠하이머재단이 지난해 실시한 서베이에서 치매환자를 양호원에 입소시키는 가장 주된 이유로 가족들은 공격적인 이상행동을 첫 손가락에 꼽았다.
하지만 양호원 측도 다른 환자와 스태프의 안전을 염려해 지나치게 폭력적인 치매환자를 받아들이지 않으려 든다. 이 때문에 치매 발병 후 ‘폭력’을 자주 행사해 온 환자들은 양호원에 들어가기 힘들다.
미 알츠하이머재단(Alzheimer’s Foundation of America)에 연락을 취하면 치매환자의 기벽을 다스릴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미 알츠하이머재단은 간병인에게 환자가 감염, 고통, 우울증 등을 앓고 있는지를 살펴보라고 권한다. 알츠하이머 환자에게는 번잡함이라든지 소음, 일과 차질 등과 같은 환경도 문제가 된다.
자신의 증상을 표현하지 못하는 치매환자들은 종종 이상행동으로 이를 대신한다. 치매환자가 선불 맞은 황소처럼 길길이 뛸 때에는 건강문제에 이상이 있는지부터 확인하는 게 순서다.
공격성과 다른 문제 행동을 다스리기 위해 사용하는 약품, 그 중에서도 특히 항정신병 약물인 자이프렉사와 세로켈은 ‘최후의 수단’이다. 이들은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키며 사망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방식품의약국(FDA)은 세로켈과 자이프렉사의 포장 겉면에 눈에 잘 띄도록 부작용 위험을 알리는 경고문을 부착할 것을 요구한다.
환자의 공격적 행동이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단계에 도달할 경우 가족과 병원 스태프는 항정신병 약물치료를 고려하게 된다.
메이요 클리닉의 알츠하이머 연구센터 디렉터인 로널드 페터슨 박사는 약물치료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환자의 상태를 살펴가며 끊임없이 투약 필요성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환경을 통제하고 극히 위험스런 약물투입을 검토하는 것은 분명 가슴 아픈 일이다.
일반 대중은 알츠하이머나 치매를 기억상실 정도로 여긴다. 하지만 그건 빙산이 일각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종종 기억상실은 치매의 가장 간단한 문제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는 환자의 경우에는 사정이 완전히 달라진다. 이들에게는 항정신병 약물투입과 같은 ‘극약 처방’이 필요할 수 있다.
피터슨 박사는 투약 여부는 “어려운 결정”이라고 인정한다. 그렇다고 달리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쉬운 해결책은 없다.
필리스 에델스타인은 62년 전에 ‘블라인드 데이트’를 통해 남편을 만났다. 훈남이었던 그는 필리스에게 열정적으로 사랑을 고백했다. 결혼 후 60년 넘게 동고동락 해온 그는 필리스에게는 단순한 남편 이상의 존재였다.
리처드가 없는 필리스의 삶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그녀가 아는 리처드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 적어도 그녀의 입장에서는 그렇다.
필리스는 조만간 병원에서 퇴원하게 될 리처드를 어디로 보내야 할지 궁리중이다.
전에 있던 양호원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필리스는 “다음번 발자국을 어디로 떼어 놓아야 할지 고민 중”이라며 “아직 방향을 정하지 못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남편과 한 지붕 아래서 지내는 것은 그녀의 검토대상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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