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악몽이 있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하거나 마음이 불안할 때면 악몽이 찾아드는 데, 그중 흔한 것이 ‘시험’과 ‘군대’ 꿈. 학교 졸업한지 수십년 된 나이에도 시험 꿈을 꾼다. 시험지를 받았는데 아무 것도 아는 게 없어서 앞이 캄캄해지는 경험이다. 남성들의 단골 악몽은 군대 꿈이다. 분명히 군복무를 마쳤는데 뭐가 잘못 됐는지 입영 통지서가 날아들어서 놀라고 당황하는 내용이다.
개개인의 신체조건이나 직업과 연관된 악몽들도 있다. 소아마비로 평생 몸이 불편했던 고 장영희 교수는 길을 가다 넘어지는 꿈을 꾸곤 했다고 한다. 목발을 놓치고 길바닥에 주저앉았는데 혼자 일어설 수도, 도와줄 사람도 없어 암담해하는 꿈이라고 했다.
그런가 하면 정치인들은 선거운동 악몽을 꾼다. 선거유세장에 갔는데 사람이 하나도 안 와서 낙담하는 꿈같은 것이다. ‘만약에’ ‘혹시라도’ 하는 두려움이 무의식 속에 잠재해 있다가 어느 불안한 순간 의식의 지각을 뚫고 꿈의 형태로 나타난다.
1980년대, 1990년대 리커스토어를 운영했던 한인업주라면 강도와 싸우는 악몽에 시달릴 법하다. 당시 한인사회에서 가장 자주 일어나는 사건이 리커스토어 강도사건이었다. 강도가 업주를 총격살해하거나 업주가 강도를 쏘아 죽게 한 사건들이 한해에도 여러 건씩 터졌다.
현금 있는 곳에 강도가 드는 것은 어느 사회에서나 마찬가지이지만 LA의 경우 좀 독특한 구도가 형성되어 있었다. ‘한인업주 대 흑인강도’라는 구도이다. 이민 와서 억척같이 일해 돈이 좀 모이면 한인들은 자영업을 시작했는데, 자금이 넉넉지 않아 싼 가게를 찾다보니 흑인동네로 들어갔다.
업주들은 ‘보기만 해도 겁이 나는’ 손님들을 상대로 장사하랴, 물건 훔쳐가는 좀도둑들 감시하랴, 총 들고 들어오는 강도에 대비하랴 보통 스트레스가 심한 게 아니었다. 잔뜩 긴장해 표정은 굳어지고, 영어가 짧으니 말도 별로 안하는 코리안 업주들과 흑인 주민들 사이에 인간적 교류는 없었다.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면서 갈등의 골만 깊어갔다.
쌓이고 쌓였던 갈등이 폭발한 것이 ‘두순자 사건’이었다. 1991년 3월 사우스 LA의 마켓에서 주인 두씨가 오렌지주스 한병을 두고 15세 흑인소녀 라타샤 할린즈와 몸싸움을 하다 총을 쏘아 소녀를 죽게 한 사건이다.
당시 한인언론들은 흑인소녀가 주스를 훔쳐가려 했다고 보도했고, 주류 언론들은 할린즈가 돈을 지불하려 했지만 두씨가 오해를 한 것처럼 보도했다. 어느 쪽이 사실이든 1달러 좀 넘는 주스 한병으로 초래된 비극은 엄청났다. 소녀는 죽고 두씨는 사회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이 사건은 1년 후 한인이민사상 최대의 ‘악몽’인 4.29 폭동의 한 뿌리가 되었다.
LA 남쪽, 윈저 힐스의 한 한인마켓이 ‘두순자 가게’라는 헛소문에 휩싸여 곤란을 겪고 있다. ‘흑인 베벌리힐스’라고 불리는 안정된 주거지역인 이곳에서 누군가가 전단지를 뿌려 ‘주인이 두순자다. 여기서 물건 사다 잘못하면 죽는다’는 악의적 소문을 퍼트렸다. 업주 애니 신씨는 신분증을 내보이며 장사를 하고 있다.
하지만 20년 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 가게단골들은 물론 흑인 커뮤니티가 나서서 신씨가 피해를 입지 않도록 보호해주고 있다. 4.29 폭동 이후 한인업주들이 지역사회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온 덕분이다. ‘20년 전의 악몽’은 이제 사그라질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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