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부모-손주의 친밀함은‘ 윈-윈’으로 이어진다
▶ 요리·양육·주택구입 등 학교에서 못 배우는 지혜 다음 세대에 가르쳐줘/ 3대가 함께 사는 노인들 ‘젊은이들에 도움’생각에 우 울증·무기력 사례 낮아
멜라니 코르테즈(38)는 외조모를 늘 가깝게여겼다. 둘 사이의 나이 차는 컸지만 거리감은없었다. 물리적 거리도 가까웠다. 외조모 앤 치암파는 손녀딸의 집에서 여덟 블락 떨어진 곳에서살았다.
할머니와 손녀의 관계는 코르테즈가 성인이된 이후 더욱 단단해졌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사귀던 남자 친구와 결혼을 하는 과정에서 치암파는 코르테즈의 멘토로 자리를 굳혔다.
손녀에 비해 가방끈은 짧았지만 산전수전 다겪으며 세상의 풍파를 헤쳐 온 치암파에게는 묵직한 삶의 연륜이 느껴지는 지혜가 있었다.
특히 손녀딸이 결혼을 한 이후 치암파는 시댁식구 다루는 법에서부터 주택구입의 ‘정석’에 이르기까지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실생활의노하우를 코르테즈에게 꼼꼼하게 전해 주었다.
직장에서 늦게 돌아왔을 때 간단히 만들 수 있는 맛깔스런 음식의 조리법도 코르테즈에게 넘겨진 할머니의 무형자산 가운데 하나였다.
신참 사회인이자 새내기 주부인 손녀딸이 실수를 저지르고 머리털을 쥐어뜯을 때마다 치암파는 그녀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
세상살이에는 늘 시행착오가 따른다. 가끔 삶의 갈피를 놓쳐 혼란스러워하는 손녀에게 치암파는 늘“ 괜찮다”며 등을 쓸어주었다.
“넌 이겨낼 수 있을 거야. 모든 것이 다 완벽해야 할 필요는 없단다” 그것이 할머니의 메시지였다.
“할머니에게는 지혜가 있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차곡차곡 쌓여진 지혜였다” 그리고짠밥의 공력이 배어든 할머니의 곰삭은 지혜는늘 손녀에게 힘을 주었다.
치암파와 코르테즈의 관계는 일방통행이 아니었다. 그들은 서로 주고, 서로 받았다.
90세의 나이에도 치암파는 정정했지만 때때로손녀에게 온라인으로 건강식을 주문해 줄 것을요청하곤 했다. 허리케인으로 장기간 전력공급이끊겼을 때 외손녀는 할머니 집으로 달려가 상황이 끝날 때까지 거기서 머물렀다.
백내장 수술을 받은 할머니에게 차량편의를제공해 준 것도 손녀딸이었다. 지난달 치암파의90세 생일상 역시 코르테즈가 차려 주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까지 그녀는 자녀양육에 관한 외할머니의 훈수를 듣는다.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 할지 정말 막막할 때할머니의 말은 늘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괜찮아. 너무 걱정하지마라” 수없이 들은 말인데도 들을 때마다 할머니의 말은 마치 마법의 주문처럼 힘이 됐다.
이제까지 조부모와 손주 사이의 관계에 관한연구는 문제 가정에서 조부모가 제공할 수 있는안전망 기능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결론은 늘 한 곳으로 모아졌다“. 일반적으로 조부모는 손주의 실질적인 양육을 담당한다.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을 챙기고 돌보는 것은 조부모의 몫으로 떨어진다. 살림살이가 빠듯한 가정에서 조부모는 손주를 지켜주고, 가계를 지원하는안전망의 역할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그러나 늘어난 평균수명 탓에 조부모와 손자ㆍ손녀와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이들의 관계도 변화를 겪게 된다. 이제는 손자ㆍ손녀가 코흘리개를 벗어나 학교를 졸업하고 가정을이룬 이후까지 조부모와의 관계가 지속된다.
보스턴칼리지 사회학자인 사라 무어먼 박사는 성년이 된 손주와 조부모가 서로에게 어떤 도움을 주는지에 관해 별로 알려진 바가 없다고말한다.
무어먼 박사는 3년에 한 번씩 남가주 가정을대상으로 서베이를 실시하는 ‘론지튜디널 스터디 오브 제너레이션스’의 1985년부터 2004년 사이의 자료를 뒤져 16세 이상의 손주와 조부모가한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는 대가족을 찾아냈다.
이들 가운데 다시 무작위로 370명의 조부모와340명의 손주를 추린 후 이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에 들어갔다.
해당기간인 1985년에서 2004년 사이의 중간지점에 해당하는 1994년 기준으로 조부모의 중간연령은 77세였고 손주 중간연령은 31세였다.
성년의 문턱을 넘어선 손자ㆍ손녀와 조부모의관계는 무어먼 박사가 예상했던 대로 여전히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였다.
“서로를 아주 가깝게 느끼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들은“ 소원한 관계”라고 대답한 조부모와 손주 그룹에 비해 우울증 증세를 보이는 경우가 적었다.
설문조사와 병행해 실시한 표준심리 검사에서도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는 조부모-손주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불면증, 무기력, 수면장애를 보이는 사례가 훨씬 적었다.
실질적인 도움, 예를 들어 자질구레한 집안일이나 교통편의, 조언 등은 손주의 우울증 점수에큰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 반면 조부모의 점수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노인들은 “어린 것들”에게 도움을 줄 때 혹은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때 우울증 스코어가 낮아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그들이 도움을 받는쪽일 때에는 우울증 스코어가 올라갔다.
이에 대해 무어먼 박사는“ 노인들은 계속 독립적이고 생산적인 삶을 유지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무언가 되갚아 줄 수 없을 때 우울해진다”고말했다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 서로 떨어져 살게 된조부모와 손주 사이의 관계도 소원해졌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등식은 여기에도 적용됐다.
무어먼 박사는 이 같은 관계에 있는 실험 참여자들의 상호 긴밀도를 측정하기 위해 여섯 가지질문을 던진 후 각각의 질문에 대해 1부터 6까지점수를 매기도록 했다.
참여자들은 “전혀 가깝지 않다”고 생각될 때에는 1점,“ 대단히 가깝다”에는 6점을 주었다. 그결과 조부모의 감정적 긴밀도 평균치는 3.96, 손자ㆍ소녀가 매긴 점수는 3.54로 ‘중간지대’에 위치했다.
전체 연구기간의 14%에 해당하는 시간에 걸쳐조부모는 성인 손주에게 실직적인 지원을 제공했다. 또 3.4%에 해당하는 시간 동안 도움을 받았으며 8%의 기간에 양쪽 모두 도움을 받았다.
반면 손주들은 “조부모가 그들이 받는 것보다더 많이 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서로를 거의 대등하게 주고받는 관계로여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양측 모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도, 받지도 않았다는 입장이다.
실질적인 도움이 어느 정도인지 상관없이 조부모-손주의 친밀도와 우울증 스코어 사이의 관계는 통계학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무어만 박사는 “조부모와 손주는 서로에게 유용한 자원이거나 최소한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할머니와 유달리 가까웠다는 그는 지난해 여름 94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무어먼 박사는 이번연구 보고서를 할머니 영전에 바쳤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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