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어라 동해야’ ‘오자룡이 간다’ ‘내 딸 서영이’는 최근 한국에서 인기를 끈 드라마들이다. 이 세 작품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유전자 검사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이 친부자 관계임을 알게 된다.
한국 드라마에는 ‘출생의 비밀’이 빠지면 얘기가 안 될 정도로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가장 흔한 것이 별 볼 일 없는 집안의 별 볼 일 없는 아들(딸이 주인공인 경우는 거의 없다)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잃어버린 재벌 집 자식이더라 하는 것이다. 자신의 힘만으로 출세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막연히 “나도 사실은 모 재벌 집 자식이 아닐까” 하는 사람들의 기대 심리를 반영이라도 하듯 말이다.
이런 드라마 덕에 한국인들은 유전자 검사에 익숙하다. 극중에서 악역을 맡은 인물이 주인공의 유전자 검사를 하기 위해 칫솔을 훔치거나 머리털을 몰래 뽑는 장면을 여러 번 봤기 때문이다. 칫솔과 머리털만 있으면 친자 확인은 하루면 되고 비용도 20만원대로 떨어졌다 한다.
요즘 한국에서는 드라마가 아니라 실제로 유전자 검사 때문에 세상이 시끄럽다. 조선일보가 채동욱 검찰총장이 혼외자식이 있다고 보도하면서 정치권이 소용돌이 치고 있기 때문이다. 법무부가 채 총장한테 감찰을 받으라 하자 채 총장은 사표를 내고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청와대는 이를 수리하지 않고 강행하려 하고 있다. 야당에서는 이를 검찰 독립을 짓밟기 위해 국정원과 청와대가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며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아직까지는 누구 주장이 맞고 누구 주장이 틀렸는지 불분명하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채 총장의 혼외자를 낳은 것으로 지목된 임 모 여인의 석연치 않은 처신이다. 임 여인은 한국 정치권이 발칵 뒤집혔는데도 자기가 쓰지 않은 것이 거의 확실한 편지 한 통을 달랑 보낸 후 행방이 오리무중이다.
임 여인은 채 총장을 옛날 식당과 술집을 할 때부터 알고 지냈으며 채 총장 같이 훌륭한 인물이 되라는 뜻으로 혼외 자식에게 아버지가 채 총장이라 말해왔고 학적부에도 채 총장 이름을 올렸다고 한다. 아이가 크면 100% 탄로가 날 거짓말을 해 가며 아이가 훌륭한 인물이 되기를 기대했다는 것도 우습지만 석고대죄를 해도 모자랄 이런 중대한 잘못을 저지르고도 채 총장에게 한 마디 사죄의 말이 없다는 것은 이상하다.
채 총장은 이 사건으로 망신은 망신대로 당하고 모든 검사의 선망의 대상인 검찰총장 직에서 물러나게 생겼다. 임 여인은 편지에서 온갖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으면서도 채 총장의 누명을 벗겨줄 단 한 마디, 아이의 유전자 검사를 받게 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망신은 망신대로 주고, 사과는 하지도 않고, 누명을 벗겨주지도 않겠다는 심보다.
당사자의 허락도 없이 엉뚱한 사람을 혼외자의 아버지로 학적부에 올리고 이를 남에게 사실인 것처럼 떠들고 다니는 것은 명백한 명예훼손죄에 해당한다. 한국 형법은 허위 사실을 공표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자에게 5년 이하의 징역형을 언도하게 돼 있다. 이 죄는 친고죄도 아니어서 채 총장의 고발도 필요 없다. 검사가 그냥 기소하면 된다.
임 여인을 구속 기소해 신병을 확보한 후 혼외자의 머리카락 하나를 받아오게 한 후 풀어주는 것이 한국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는 이 사건을 신속하고도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임 여인이 끝내 이를 거부한다면 혼외자는 채 총장의 친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자기가 명예를 훼손한 사람의 결백을 입증해 줄 수 있는데도 감옥에 가면서까지 이를 거부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채 총장도 감찰 거부 의사를 하루 빨리 철회하는 것이 옳다. 자기 말대로 임 여인과 통화를 한 일도, 금전을 주고받은 일도 없다면 감찰을 통해 이 또한 명명백백히 밝혀질 것이기 때문이다. 기분 나쁘다는 이유만으로 감찰을 거부하는 것을 허용한다면 앞으로 감찰 제도는 유명무실해질 게 뻔하다.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길을 놔두고 빙빙 돌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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