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문학.음악 함께하니 인생이 즐거워”
▶ 이준구 사범 동생 아닌 내 이름 찾고싶어 뉴욕으로
비즈니스에 성공하였을 뿐 아니라 문학과 음악에도 능하여 인생을 재미나게 살고 있는 이전구 뉴욕골프센터 회장, 그는 성공비결을 ‘신용’이라고 한다. 하모니카 부는 소년의 이미지와 더불어 웃음이 함박진 그의 인간관계도 넓고 깊다.
● 내 이름 찾고자 뉴욕으로
“올해로 비즈니스 30년째다. 두 아들이 함께 경영에 참가하고 있지만 수시로 골프센터로 나가 전반적인 운영을 본다.”
이전구는 1941년 1월 15일 충남 아산에서 이진훈(李晉薰), 홍계임씨의 2남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가 성균관 유학자로 1902년 21살 나이에 고종황제가 하사하시는 박사 벼슬을 한날한시에 받으셨다. 두분이 함께 성균관 앞뜰 계단을 내려오시면서 어머니가 3살, 아버지가 한 살이던 때 사돈하자고 약속하셨다.”
두 할아버지의 문장 솜씨가 대단하여 다른 가문에서도 조상들의 비문을 쓸 때는 두 분에게 부탁할 정도였고 아산군 일대에 이(李)박사댁, 홍(洪)박사댁으로 유명했다.
이전구는 1964년 서울농대 임학과를 졸업한 후 수원에서 아버지가 하던 운수업과 염전사업을 맡아서 했다. 그러나 남양만 간척지사업을 하다가 실패한 후 1971년 이민 간 형이 있는 미국으로 왔다.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워싱턴DC에 도착한 그는 9살 위인 형 이준구(Jhoon Rhee) 사범의 태권도장 매니저로 일했다.
이준구 사범은 1950년대 후반에 미국에 유학 와서 태권도를 미국에 최초로 소개하고 지난 45년간 350여명 미 국회의원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친 태권도계의 ‘전설’로 통하며 1976년 독립 200주년에 ‘세기의 무술인’으로 선정되었다.
“워낙 형이 유명하다 보니 난 그냥 ‘준 리의 브라더’였다. 13년간 태권도장에서 일하면서 내 이름을 찾고 싶었다. 형님이 엄청 섭섭해 하셨는데 나중에 뉴욕에 와서 비즈니스에 성공한 것을 보고 좋아하셨다. 성공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
이전구는 워싱턴에서 주위 지인들이 골프샵을 운영하는 것을 보고 가능성이 있겠다 싶었다.
“1984년 뉴욕에 와 워싱턴의 집 판 돈으로 골프용품점을 열었다. 처음 5년간 적자였으나 온 가족이 매달려 청소하고 하루 16시간씩 일하며 버텼다.”
형의 그늘에 있으면 먹고 살 걱정하지 않고 인생을 편하게 갈 수 있는데 이전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결단을 내렸고 인내와 집념, 강한 추진력으로 앞날을 개척했다. 낙천적이고 활달한 성격은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했고 성실함과 믿음이 한 몫 했다.
1991년, 그의 인생에 터닝 포인트가 왔다.
“1990년 거래은행이던 제일은행이 지금의 뉴욕골프(131 웨스트 35스트릿) 매장 건물을 사라고 제의했다. 다운 페이도 은행이 알아서 세컨 모기지를 주면서였다. 1991년 구입한 건물로 이전하면서 매상이 배로 늘고 모든 것이 잘 풀려나갔다. 2000년에는 위로 한층 더 넓혔다. 내 건물이 있어서 IMF, 9.11, 금융 위기 모두 이겨나갈 수 있었다. 두 아들도 비즈니스에 참여하여 힘이 되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
그는 성공한 비즈니스맨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라고 한다.
“첫째로 가정이 화목해야 한다. 부부, 자녀, 직원, 고객, 사업체 등 모든 인간관계가 잘 되어야 한다. 가까울수록 신용을 잘 지켜야 한다. 특히 은행과의 관계에서는 신용이 생명이다.”
이태리계와 유대인이 장악한 뉴욕의 골프 소매업 시장에서 탑으로 자리를 잡으니 캘러웨이와 테일러메이드 같은 유명회사들이 무제한으로 외상을 주었고 한국의 친구들도 ‘돈이 필요하면 쓰라’고 먼저 목돈을 갖다 맡길 정도니 비즈니스에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현재 뉴욕골프 직영매장은 맨하탄 매장과 첼시 피어 골프연습장 프로샵, 파크 애비뉴 그랜드센트럴 샵 3곳이며 롱아일랜드 힉스빌과 포체스터 지역은 사업 파트너관계로 필요에 따라 광고와 구매를 함께 한다. “이곳에 들어오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손님들도 아주 아름답다고 한다. ”는 그의 말에 뉴욕골프센터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가득 깃들어있다. 종업원 3명으로 시작했지만 현재 2만1,000스퀘어 피트 매장에 직원은 25명 정도다.
이전구는 지난 30년간 뉴욕한인사회에서 크고 작은 단체의 장을 두루 맡아 봉사 경험으로도 단연 탑10에 들어간다.
1992년~1993년 서울대 뉴욕동창회장, 1996년~1997년 뉴욕한인상공회의소 회장, 2001년~2002년 뉴욕리버티 뱅크 이사장, 2001년~2002년 뉴욕지구 한국대학동문 총연합회 회장, 2003년~현재 뉴욕가정문제연구소 이사장, 2007년~2009년 미주서울대학교 총동창회 회장을 지내면서 물심양면으로 봉사했고 넓은 인맥을 쌓았다.
뿐만 아니라 20여년째 해외한인무역인들의 정보교류와 네트워킹의 장이 되고 있는 한민족 경제공동체 해외대회에도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올 4월 한국에서 CEO 준비모임을 하고 10월 제주도에서 열리는 한상에 참여할 예정이다. 그는 1995년 세계상공인대회 외무부 장관상, 1997년 세계상공인대회 무궁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열심히 봉사했다.”고 한마디로 정리하는 그는 한인단체와 후배들 밥값 봉사도 많이 한 것이다.
●하모니카와 시조, 인생을 노닐다
성공한 이민 1세대로 이전구는 이민문학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1998년 ‘한글문학’을 통해 한국문단에 시로 등단하여 리듬 있고 감성 넘치는 ‘이삿갓 북한 유람기’ 기행 시집을 발행하고 1998년 충청대학 명예교수 임명되었다. 2003년 한상대회에서는 그가 작사한 ‘한상의 노래’가 채택되었으며 2002년~2006년에는 미동부문인협회 이사장, 2012년~2013년 미동부한국문인협회 회장을 지냈다.
그가 쓴 시 ‘골프 인생’과 어머니를 그리는 ‘사모곡’은 잘 알려져 있다.
1966년 아버지가 위병으로 돌아가시고 1970년 아들을 따라 이민 온 어머니는 장사하러 나간 아들 며느리를 대신 하여 손자를 업어 기르고 밥을 지어 주시며 뒷바라지 해주셨다. 1995년 92세 나이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는 평소 “너희가 이만큼 성공해서 잘 살게 된 것은 은혜를 베푼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은혜를 입었으면 꼭 갚아라”는 가르침을 주고 주위사람들은 ‘너희 어머니가 쌓은 은공에 자손들이 덕을 본다“고 말했다.
“중학교 1학년때 6.25가 나고 형이 실종되었는데 어느 날 논산훈련소에서 집으로 소포가 왔다. 길에서 군 징집요원들에게 잡혀 입대한 형님이 입던 옷과 형이 불던 하모니카가 들어있었다. 그 하모니카를 형을 생각하며 불다보니 부는 법을 절로 익히게 되고 보리수 노래까지 불게 되었다. 지금도 악보는 볼 줄 모른다. 모차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뮤직도 모두 외워서 링컨센터 무대에 섰다.”
4개의 하모니카를 들고 모차르트 곡을 부는 이전구는 음악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았어도 진정으로 예술을 즐길 줄 아는 것이다. 음악과 시를 말할 때의 그는 ‘약속을 칼같이 지키는’ 비즈니스 맨 모습이 전혀 없이 그저 감수성 풍부한 하모니카 부는 소년일 뿐이다.
2002년 뉴욕 링컨센터 에버리 피셔홀에서 아메리칸 로열 심포니 오케스라와 하모니카 협연을 비롯하여 워싱턴DC 밀레니엄 콘서트 워싱턴 교향악단, 베르디 100주년 음악회 뉴욕메트 오페라 가수들과, LA 로얄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하모니카 협연을 해왔다.
이전구는 평생 옆에서 묵묵히 내조해오는 부인 유희정(43년생)씨와 슬하에 두 아들을 두었고 장남 창우는 맨하탄 본점 사장, 작은아들 헌경은 첼시 피어점 사장으로 일한다. “교회를 다니지 않지만 그동안 축복을 너무 많이 받아 사무실에 나오면 항상 감사하다는 기도부터 한다.”
이전구의 웃음소리는 화통하다, 밝고 환하다. 그로부터 날아든 웃음 바이러스로 인해 매사 잘될 것 같으니 그의 화통한 웃음은 수백만 달러짜리 맞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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