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과 생각
▶ 김 종 영 <이태리 안경원 회장>
인종갈등 문제는 미국사회의 민감한 아킬레스건이다. 이민으로 이루진 다인종ㆍ다문화 사회이니 인종 간의 부딪침을 피해갈 수가 없다. 인종갈등은 지뢰처럼 사회 도처에 깔려 있어서, 언제 터질지 모른다.
우리 한인사회도 4.29 폭동을 겪으며 엄청난 수업료를 지불했다. 그런데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다. 여전히 아슬아슬하다. 안타까운 일이다.
폭동 때, 내가 경영하는 점포가 피해 지역인 한인타운 한 복판에 있었기 때문에 안절부절 걱정하며 며칠을 보내야 했다. 그러는 동안 “아이쿠, 내가 뭐 하러 이 불법천지로 이민 왔나!”하는 탄식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그 폭동의 비극을 계기로 제조업 쪽으로 눈길을 돌리게 되었으니, 나에게는 전화위복이 되었지만, 그 때 지불한 정신적 수업료는 대단히 컸다.
미국사회에서 기업을 경영하려면 다른 인종들과 어울리며 더불어 살 수밖에 없으니, 갈등을 슬기롭게 다스리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그런 점에서 내 경험이 혹시라도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소개한다.
지금 내가 경영하고 있는 ‘이태리 광학’에는 약 200여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는데, 약 80%가 다른 인종 직원이고, 그 중의 약 70%가 히스패닉이다. 나머지가 한국인과 백인 직원이다. 그러니 인종문제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내가 고집스럽게 지키고 있는 원칙은 피부색에 관계없이 철저하게 능력위주로 사람을 대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곳보다 나은 대우와 작업환경을 갖추려고 노력한다. 능력 있는 직원은 그만큼 대우를 받는다. 말하자면 일하는 보람을 느끼도록 해주는 것이다. 반대로, 능력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다.
우리 회사는 직원 채용 때 서약서를 쓴다. 같은 실수를 세 번 되풀이하면, 스스로 그만둔다는 내용이다. 비정한 것 같지만, 그런 원칙을 누구에게나 똑같이 철저하게 적용하기 때문에, 직원들의 불평이 생기지 않는다. 우리 회사에서는 지금까지 인종갈등으로 인한 문제가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는데, 그 비결은 원칙을 지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우리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일일 것이다. 우리는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단일민족’이라는 생각에 젖어 있어서 다른 인종과 어울리는 일에 매우 서툰 것이 사실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 한국 사람만큼 인종차별을 심하게 하는 민족도 드물 것이다.
우리말에 외국인을 낮잡아 보는 말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외국인을 부르는 단어에는 거의 ‘놈’자가 붙는다. 지금 한국에는 100만명이 넘는 외국인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다민족 사회가 된 것이다. 그런데 그 외국인을 대하는 한국 사람들의 생각이나 태도에는 무척 문제가 많다고 한다. 처음 겪어보는 일이라서 그렇다고 너그럽게 봐주기 어려운 수준인 모양이다.
물론 우리 미주 한인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타인종 종업원에게는 무조건 반발이요, 욕설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런데 그 친구들은 그 욕을 다 알아듣는다고 한다. 그러니 진심으로 열심히 일을 할 리가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중성이다. 나보다 나은 것 같은 사람에게는 비굴하게 굽실거리고, 나보다 조금이라도 못해 보이는 사람에게는 거칠게 우쭐대는 이중성 말이다.
나는 어떤가? 백인을 대하는 태도와 흑인이나 라티노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같은가? 생각해보면 아찔하다. 걸핏하면 억울하게 인종차별을 받고 있다고 투덜대면서, 한편으로는 낯 뜨거운 인종차별을 거리낌 없이 해대며 살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그런가 하면 스스로를 백인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바나나 코리안’도 적지 않다. 그 열등감과 자만심 사이에서 우리의 영혼은 병들고, 품위 있는 세계인의 자격은 날아가 버린다. 그런 이중성에서 벗어나, 다른 인종들과 편안하게 어울리며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익히지 않으면, 4.29 폭동 같은 인종갈등의 지뢰가 언제 또 터질지 모른다. 아슬아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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