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과 생각
▶ 김 종 영 <이태리 광학 회장>
서정주 시인의 시 ‘자화상’에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라는 유명한 구절이 나온다. 이 구절을 빌려 나를 표현하면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독서다”라고 말할 수 있겠다.
처음 안경업계에 뛰어들 때부터 그랬다. 내가 안경제조를 직업으로 생각하고 매달릴 무렵 한국의 안경업계의 현실은, 일본 사람들이 두고 간 시설은 조금 있었지만 제대로 된 기술은 거의 없는 허허벌판이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상황이니 마땅히 정보를 얻을 곳도 없었다. 기댈 것이라곤 오로지 책뿐이었다. 주로 일본책으로 공부했다.
그 때부터 습관이 되어 평생 다방면의 책을 읽으며, 책에 기대며 살아왔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책을 통해서 알아냈고, 막히는 일이 생기면 책을 통해서 해결책을 찾으며, 책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때로는 책에서 위로를 받으며 여기가지 왔다. 그러니까 책은 나의 학교요, 스승이요, 길잡이요, 생존전략인 것이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이 내게는 가장 소중한 진리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든지 ‘취미가 독서’라는 말에 동의할 수가 없다. 독서가 어째서 취미이고, 가을에만 책을 읽는다는 말인가?
한국의 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3년 1년간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사람이 한국 국민 10명 중 3명일 정도로 ‘책을 읽지 않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고 한다. 우리 미주 한인사회의 현실은 어떨까?
물론 지금은 세상이 좋아져서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같은 문명의 이기를 통해 원하는 정보를 얼마든지 그 자리에서, 그것도 공짜로 얻을 수 있다. 정보가 넘쳐난다. 그러니 고리타분하게 책을 뒤적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그래서 종이책은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라는 서글픈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우리가 책에서 얻는 것은 단순한 정보나 지식이 아니다. 삶에 대한 폭넓은 지혜, 세상을 바르게 바라보고 사람을 제대로 사랑하는 마음을 책에서 얻는다. 그래서 책이 소중한 것이다.
안경을 만드는 일도 마찬가지다. 안경이야 기술만 있으면 만들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흔히 좋은 안경은 과학, 의학과 예술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정말 좋은 안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여기에 인문학적 소양이 더해져야만 한다. 사람을 알아야 좋은 안경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사람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해 주는 것이 인문학이고, 독서다.
안경뿐 아니라 다른 분야도 다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요사이 기업 경영이나 정치 등의 여러 분야에서 인문학 열풍이 부는 것도 모두 그런 까닭이다. 모든 것의 중심이요 근본인 사람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아무리 첨단 디지털 기술이 발달해도 아날로그 사고방식이 필요한 것이다. 눈부신 디지털 기술의 근본이 아날로그요, 독서라고 말하기도 한다. 스티브 잡스가 어린 시절 다녔던 도서관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 것도 바로 그런 것이다.
기술적인 면에서도 그렇다. 예를 들어, 안경 렌즈를 깎는 작업의 경우 당연히 컴퓨터가 사람보다 훨씬 더 잘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컴퓨터가 못하는 일을 사람의 손으로 처리해야 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첨단기술이 사람을 완전히 대신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핵심은 사람이다. 안경도 결국 사람을 위해서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제대로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제대로 알아야 진심으로 대할 수 있고, 사랑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회사 직원들에게 책을 많이, 그것도 다방면에 걸쳐 읽으라고 강조하곤 한다. 아름다운 시(詩)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라면 나쁜 안경을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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