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청마 유치환의 시 ‘행복’의 한 구절이다.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로 끝나는 이 시는 사랑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서 편지의 소중함을 말하고 있다.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씀으로써 가슴 벅찬 사랑을 전하고 그래서 행복하다고 시인은 노래한다.
지금의 중년세대만 해도 편지 봉투를 손에 들고 가슴 두근거리던 경험은 연애할 때의 당연한 일상이었다. 편지를 써서 부치면서 설레고, 우체부가 배달해온 편지를 받아들고 설레고 … 하얀 봉투는 때로 소리 없는 아우성, 열띤 감정의 용광로였다.
변화가 찾아든 것은 1990년대부터였다. “요즘 젊은이들은 전화로만 이야기하고 도통 편지를 안 쓴다”고 나이든 세대는 못마땅해 했었다. 2000년대 들어 인터넷이 보편화하고 셀폰이 등장하면서 ‘편지’는 박물관의 유물 수준이 되었다. 펜으로 또박또박 편지를 쓰는 일을 직접 하는 것은 고사하고 옆에서 구경하기도 힘들어졌다.
편지뿐 아니라 카드도 우편으로 받는 일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지난 연말만 해도 웬만하면 전자카드로 성탄 인사를 주고받는 것이 한 추세가 되었고, 최근 카카오톡 사용자가 부쩍 늘면서 올해는 카톡 신년 인사가 특히 유행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 첨단테크놀로지와 우리가 가까워질수록 점점 자취를 감추는 것은 편지지, 종이카드 그리고 봉투. 어느 가정에나 필수품이던 하얀 봉투는 이제 좀처럼 볼 수가 없게 되었다.
2년 전 LA의 한 음악CD 판매업소가 ‘봉투의 추억’이라는 광고를 냈었다. 언제부턴가 우리 주변에서 봉투가 사라졌다며 새해에는 마음이 담긴 봉투를 주고받자는 내용이었다.
“매달 받던 월급봉투, 애인에게 받던 편지봉투, 친구끼리 방학이 되면 주고받던 안부의 편지봉투, 그리고 새해 아침 어른께 세배를 올리면, 미리 준비 해두시고 주시던 세뱃돈 봉투 …”‘편지’ 혹은 ‘봉투’가 ‘추억’으로 밀려나는 변화를 가장 민감하게 느끼는 곳이 있다. 바로 우정국이다.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연방우정국은 또 다시 몸집 줄이기에 착수했다. 올해 안에 미 전국에서 82개 우체국을 추가로 폐쇄하겠다는 계획이다.
미국이 독립되기 1년 전인 1775년 창설된 우정국은 200여년 미국사회에서 중추적 역할을 했다. 1970년 이전까지 행정부의 한 부처로서 수장은 장관급이었다. 잘 나가던 우정국에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2006년. 이후 전국에서 수백개 우체국을 통폐합해서 수를 줄이고 직원들의 조기은퇴를 권유하는 등 구조조정을 해왔지만 해마다 불어나는 적자를 감당할 길이 없다.
근본적 원인은 우편물의 양이 줄어든 것. 2006년부터 우편물의 양이 27% 이상 줄어들었다. 개인 편지는 물론 상업용 편지도 온라인 메일로 대체되니 편지의 씨가 마를 판이다.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쓰던 정든 우체국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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