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그대는 가난해?
물어온다 아직도
그대는 그토록 먼 곳을 여행 중이야 물어온다
사막 한복판의 이글루
끝없이 녹아내리는 모래
보료 위에서나는 까마득히 잠들었는데
휘몰아치는 검은 해와
붉은 달, 꽃과 새와 나무가 물어온다
스무 해도 더 전에 죽은
옛 애인의 적막한 음성이
봄날의 진눈깨비처럼 내 곁에서 붐빈다 물어온다
백설조차 벌써 까맣게 타버렸는데
코끝에 맴도는 이 라벤더 향기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몇 백 년을 돌아오고 있는 중이야?
/ 김명리(1959 - ) ‘옛 애인의 적막한 음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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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득한 날에 헤어진 옛 애인이 아직도 가난해? 라고 말을 걸어온다. 아련한 잠 속에 문득, 난데없이, 꿈결처럼 아직도 여행 중이냐고 근황도 묻는다. 사랑이라는 짧고도 깊은 인연을 가로질러 훌쩍 떠나간 그가 돌아와 까맣게 탄 백설을 깨운다. 무량의 슬픔이 잦아든 후, 백 년에 한 번인 듯 찾아온 옛 애인의 목소리, 코끝을 스치는 라벤더 향기는 어느 날의 감미로웠던 추억이란 말인가.
<임혜신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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