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늦잠을 잤다고 가정해보자. 출근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세수를 하는 둥 마는 둥 허둥지둥 달려 나와 지하철을 탔는 데 뭔가 이상하다. 옆 사람들이 계속 쳐다보며 의아한 눈길을 보낸다. 몇몇은 킥킥 웃기도 한다. 뭐가 잘못 된 걸까?
그러고 보니 뭔가 허전하다. 다리가 써늘하다. 내려다보니 아차, 바지를 안 입고 나온 것이다. 셔츠 입고 코트 걸치고 목도리까지 다 했는데, 너무 서두르느라 바지 입는 것을 깜빡 했다.
이런 상황이 펼쳐지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실제로 한번 해보면 재미있지 않을까? 뉴욕시의 연극배우인 찰리 토드는 14년 전 아마도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지 안 입고 지하철 타는 날’ 행사이다.
일종의 대규모 농담 같은 행사, ‘노우 팬츠 데이’가 지난 12일 전 세계 26개국 근 60개 도시에서 펼쳐졌다. 살을 에는 추운 날씨에 소름 돋은 다리를 허옇게 드러내 놓고 지하철을 탄 사람들이 뉴욕시를 비롯해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피닉스 멀리 런던, 베를린, 스톡홀름 등에 걸쳐 수만명에 달했다.
멀쩡하게 생긴 사람들이 팬티 바람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광경이 특히 뉴욕시에서는 더 이상 낯설지가 않다. 매년 4,000명 이상이 참가하는 연례행가 되었다.
2002년 처음 ‘바지 안 입고 지하철 타기’를 시도했을 때만해도 이런 실없는 장난이 오래 가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첫 행사에 참가한 사람은 남성 7명. 한 정거장에 한명씩 바지 안 입은 사람들이 차례로 탄 후 서로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고 혹시 누가 물으면 ‘그냥 잊어 버렸다’고 대답한다는 각본이었다. 그리고는 8번째 정거장에서 탄 사람이 바지를 가방에 담고 와서 1달러씩에 파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마침내 이 모두가 장난인줄 알아챈 승객들은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을 것이었다.
그리고는 그만일 줄 알았는데 참가자가 해마다 늘었다.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는 것이었다. 차츰 TV 프로그램에 소개되고, 어느 해에는 참가자들이 공공장소에서의 문란행위로 체포되기도 하면서 이 별난 장난은 계속 입소문을 탔다.
토드는 ‘임프로브 에브리웨어’라는 단체를 설립해 ‘노우 팬츠 데이’를 주관하고 있는 데 이 단체의 목표는 온갖 기상천외한 장난들을 고안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그렇게 행한 퍼포먼스들이 이미 100여건. 예를 들어 한여름에 푹푹 찌는 지하철 승강장에서 ‘스파’ 행사를 펼치기도 했다. 방금 목욕을 끝낸 듯 타월을 두른 사람들이 승강장 의자에 앉아서 쉬기도 하고 마사지도 받고 하는 익살스런 장면을 연출했다.
이 악물고 살아도 살기 힘든 세상에 이런 장난이나 기획하는 의도는 간단하다. ‘웃자’는 것이다. 무슨 대단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그냥 코미디, 웃자고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너무 심각하지 말고 장난도 치며 재미있게 살자, 그러면 인생은 충분히 즐거운 것이라는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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