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시리즈 5차전. 맷 하비는 테리 콜린스 감독에게 항의했다. 8회 초 3명의 타자를 차례로 아웃 시키고 덕아웃으로 돌아온 그는 완봉승을 내심 그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콜린스 감독은 생각이 달랐다. 정규시즌 중 이었으면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선발 투수에게 완봉승의 기회는 자주 오는 게 아니다. 그러나 이건 월드시리즈였고 1승3패로 한번만 더 패하면 끝이었다. 감독은 마무리 전문 투수 주리스 파밀리아를 준비시켰다. 하비는 그 때까지 캔사스시티 로얄스의 강타선을 산발 4안타, 9삼진으로 묶었다. 구위도 좋았다. 그의 별명은 배트맨 영화의 다크 나이트. 핼로윈 다음 날인 11월1일 뉴욕의 밤, 벼랑 끝에 몰린 메츠를 구원해 줄 흑기사였다. 관중석에는 배트맨 가면을 쓴 이들이 많았다. 그들은 하비를 연호했다. 하비는 콜린스 감독에게 "이 경기를 끝내고 싶다"고 강하게 어필했고 감독은 그의 말을 들어 주었다. "나가서 아웃 시켜라"는 격려의 말과 함께. 관중의 환호 속에 하비는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5차전의 영웅 스토리는 그렇게 완성되는가 했다. 그러나 하비는 그 때 흔들렸고 볼넷과 적시 2루타로 실점을 한 뒤 마운드를 내려왔다. 로얄스는 여기서 메츠의 수비를 흔들며 2루 주자까지 불러들여 승부를 연장으로 이끌었고 결국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콜린스 감독은 하비를 내보낸 자신의 결정을 탓했다. 자신의 잘못임을 되뇌었다. 만약 처음 생각대로 마무리 투수에게 마운드를 넘겼다면 그 경기를 이겼을 수 있다. 그리고 6차전, 7차전을 모두 이겨 우승을 차지할 수도 있다. 메츠의 희망은 그렇게 뉴욕의 어둠과 함께 묻혔다. 투수교체 결정의 번복은 찰나에 이루어졌다. 공교롭게도 서머타임이 해제된 그날 밤의 일이었다. 1시간을 되돌린 이날처럼 시간을 1분이라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래서 다시 결정을 내린다면. 마무리 투수가 제 역할을 잘 해낼 수도 역전을 당할 수도 있다. 결정의 잘잘못은 언제나 결과가 나와야 안다. 두 갈래의 길을 동시에 걸을 수 없고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다. 고령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대다수가 시간을 인생의 가장 소중한 자산으로 꼽았다. 경제, 테크놀로지 전문 인터넷 신문인 ‘비즈니스 인사이더’가 최근 보도한 코넬대 연구 내용에 따르면 어쩔 수 없는 일에 걱정하면서 시간을 보내지 말았어야 했다는 고령자들의 반응이 소개되고 있다(한국일보 11월2일자 1면 참조). 인생을 오래 산 이들이 체득한 지혜다.
메츠 감독이 그날의 결정을 두고두고 후회할 지는 모르지만 시간은 되돌아가지 않는다. 이런 때는 똑 같은 상황이 다시 온다 해도 같은 결정을 내렸을 것이라는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낫겠다 싶다. 결정은 했으나 결과는 지나 봐야 아는 일이 세상사에 널렸다. 대통령을 뽑는 일부터 복권 구매 등 사소한 일, 그리고 우리처럼 미국에 와서 잘 살아 보겠다고 한 일생일대의 결정까지. 많은 분들이 만약 내가 한국에서 그냥 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념에 한번쯤은 빠졌을 법 한데 다시 돌아갈 수는 있어도 때는 그 때가 아니다. 시간은 단 1초도 사람을 기다려 주는 법이 없다. 후회는 과거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고백이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은 안주거리로만 족하다. 그리고 나에게 묻는다. ‘지금’을 살고 있는가. 그날 밤 ‘만약’은 또 있다. 메츠의 3번 타자 2루수인 대니얼 머피. 그는 컵스와의 시리즈에서 매 게임 홈런을 날리며 MVP에 올랐다. 염소 이름과 같아 컵스 팬에게 머피의 저주로도 불렸던 그가 월드시리즈에서는 5차전을 포함해 2차례나 결정적인 에러를 범했다. 머피의 저주 없이 컵스가 월드시리즈에 나갔더라면 또 어땠을까. 해는 짧아 졌는데 1시간 되돌려 졌다고 별 생각이 다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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