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의 하나는 빠른 것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미국인들은 몇 시간이고 줄 서는 데 익숙하지만 한인들은 불과 몇 십분 기다리는 것도 못 참는다. 타인종이 한인들을 “빨리 빨리 피플”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유가 있다.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초고속 인터넷이 제일 많이 보급된 것도 이같은 한국인의 특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이텍 등 기계 분야만 그런 것이 아니다. 지난 수십 년 간 한국인들의 의식 구조도 어마어마하게 바뀌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아마 아들 선호 사상이 아닐까. 일제시대와 해방 직후는 말할 것도 없고 80년대까지도 결혼을 하면 대를 이을 사내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이를 위해 옛날처럼 첩을 들이지는 못해도 초음파 검사를 통한 태아 감별이 유행했다. 이로 인해 세 번째 자녀의 성비는 193대 100까지 올라갔다.
자연이 정한대로 아이를 낳으면 남녀 성별은 남자 105대 여자 100쯤 된다. 남자는 병이나 사고로 죽을 확률이 여자보다 높기 때문에 자연이 이를 알아 남자를 조금 더 많이 낳게 해놓은 것이다. 그러나 남아 선호가 절정에 달했던 1990년 한국의 남녀 출생 비율은 당시 세계 최고인 116.5대 100까지 치솟았다.
이런 현상은 한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월 스트릿 저널에 따르면 남아 선호로 90년 1억 2,000만 명의 여아가 태어나지 못했던 것으로 추산된다. 이중 1억 1,000만이 아시아에서 발생했다. 성비 불균형은 심각한 사회 문제를 초래한다. 남녀 성비 1 포인트만 남성이 정상보다 높아질 때마다 재산 및 강력 범죄는 5~6% 높아진다는 통계도 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남은 남성이 결혼 상대를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2005년 한국에 신고된 결혼 중 10%는 한국 남성과 베트남 등 동남아 여성 사이에 이뤄졌다. 남아 선호 사상이 아직도 남아 있고 한자녀 출산이 의무화된 중국의 경우 2050년이 되면 결혼할 남성 186명 당 여성은 100명밖에 없다. 다행히 2008년 120대 100이던 중국의 출생아 남녀 성비는 작년 115.9대 100으로 떨어졌다.
90년대부터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함께 여권 운동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태아 성감별이 불법화됐다. 아들을 낳아도 옛날처럼 부모를 모신다는 것을 기대할 수 없게 되자 남아 선호는 급속히 식기 시작했으며 오히려 딸이 노후에 더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널리 받아들여졌다. “딸 둘 아들 하나는 금메달, 딸 둘은 은메달, 딸 하나 아들 하나는 동메달, 아들 둘은 목메달”이라는 이야기가 나온 것도 이 때쯤이다. 이와 함께 신생아 성비도 2005년 110, 2010년 107, 2014년 105로 떨어졌다. 이는 미국이나 유럽과 같은 수준이다.
최근 나온 자료는 아들보다 딸이 공부도 잘 하고 시험 점수만으로 당락이 좌우되는 직종에서는 취직도 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남녀 임금 격차가 아직도 세계 하위권이기는 하지만 20여년이란 짧은 시간에 이만큼 의식이 변하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한국인들은 성질이 급해 손해 보는 일도 많지만 한번 결심하면 이루는 것도 빠르다. 남녀 선호 탈피는 한국인들이 지난 수십 년 간 이룩한 가장 큰 사회적 업적으로 보아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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