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으로 세 번째 대통령 선거 코커스(당원대회)에 참가하는 셈이지만 이처럼 투표 열기가 뜨거웠던 적은 없었던 같다. 워낙 사람이 많이 몰리다 보니 예정 시간보다 30분 일찍 갔는데도 1시간을 기다려 7시 반이 돼서야 대회를 시작할 수 있었다. 뉴스를 보니 역대 최대 인파가 올 선거에 참가했다 한다.
투표소는 주소에 따라 정해지는데 내가 속한 W34 지구 투표소는 한 중학교에 있었다. 같은 곳에서 공화당과 민주당 코커스가 동시에 열렸다. 각 당 코커스에 참가하려면 당원이어야 하지만 당일 투표장에서 자기가 어느 당이라고 사인만 하면 되기 때문에 사실상 그날 마음에 드는 후보를 골라 찍을 수 있다. 민주당 투표소에 버니 샌더스 지지자로 보이는 대학생 등 젊은 유권자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내가 간 공화당 투표소에는 투표 시작 전 10명의 후보 지지자들이 자기 후보를 찍어 들라는 연설을 했다. 특이한 것은 각종 여론 조사에서 줄곧 선두를 달리던 도널드 트럼프 후보 지지연설을 한 사람이 단 한 명뿐이었다는 사실이다. 테드 크루즈 지지 연설을 한 사람이 4명으로 가장 많았고 마르코 루비오 지지 연설자는 하나도 없었다. 트럼프 지지자를 빼고는 모두 트럼프를 맹비난한 점도 특기할 만 했다.
그러나 투표 결과는 예상과 딴판이었다. 루비오가 75표, 크루즈 60표, 트럼프 27표, 벤 카슨 21표였다. 나머지 후보는 단 한 표도 얻지 못했다. 이날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나 분위기로 미뤄 볼 때 대다수 아이오와 사람들은 트럼프는 “성질이 못 돼”(nasty) 대통령 감이 될 수 없고 민주당 대선 후보로 유력시 되는 힐러리와 싸워 이길 수 있는 후보는 루비오 밖에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크루즈가 아이오와의 생명줄인 옥수수를 원료로 하는 에타놀에 반기를 든 것도 그 지지자들을 루비오 쪽으로 움직인 것 같다.
공화당원들은 오바마에 대해 극도의 반감을 보였으며 어떤 일이 있어도 또 다시 백악관을 민주당에 넘겨줘서는 안된다고 결심한 듯 했다. 아이오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디모인 레지스터지가 루비오를 지지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인 것처럼 보인다. 이런 요인들이 작용해 예상을 깨고 루비오가 트럼프에 근접한 3위를 한 코커스 결과가 나온 모양이다.
한편 민주당에서는 샌더스의 맹추격을 받던 힐러리 클린턴이 한숨 돌린 모습이다. 아이오와는 힐러리에게 2008년 버락 오바마에게 1등을 내주고 존 에드워즈에게도 밀려 3등을 한 아픈 추억이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참패한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그 해 힐러리는 민주당 대선 후보 자리를 끝내 오바마에게 내주고 말았다.
아이오와 다음에 열리는 뉴햄프셔 예선에서는 샌더스의 압승이 예상되는데 올해 아이오와에서도 지고 뉴햄프셔에서도 참패한다면 확고한 선두주자였던 힐러리의 위상이 흔들리면서 2008년의 악몽이 재현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슬아슬한 신승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이번에는 아이오와에서 1등을 해 체면치례는 했고 뉴햄프셔에서 어느 정도 선방하면 그 다음 있을 사우스캐롤라이나 등 남부 주에서는 흑인 표에 힘입어 낙승이 예상되기 때문에 민주당 후보 지명을 따내는데 큰 문제가 없을 거란 전망이다.
이번 아이오와 코커스는 공화당 후보 가운데 전국적으로 압도적 1위를 달리던 트럼프에게 첫 패배를 안겨주면서 그의 대선 후보 지명 가도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의 지지자들이 목소리는 크지만 투표장에는 나오지 않으며 그의 지지도에 거품이 끼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그가 여기서 이겼더라면 파죽지세로 공화당 후보 지명을 따냈을 것이다. 아이오와 인들은 투표를 통해 여론 조사가 다가 아님을 분명히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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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조 아이오와 스테이트 산업공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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