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젊은이에게 물었다. 북한이 핵실험을 했는데 그 얼마 전에 큰 홍수 피해를 봤다. 홍수 피해 주민들을 도와줘야 할까. 대답이 금방 나왔다. “그래야죠. 북한 정권과 주민은 구분해야죠.” 되물었다. 어떻게 도와주지. 핵 개발하는데 쓰면 어떻게 하지. “피해 주민들을 직접 도와야죠.” 북한 정권이 허용할까. “음… 방법이 있겠죠.”
각론과 일관성이 문제였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햇볕정책이 북한 핵개발을 도운 꼴이 됐다고 비판하지만 기근에 시달리는 북녘동포들을 외면하는 것도 할 짓이 아니다. 개성공단 문을 닫고 북한과 거래하는 해외의 모든 창구를 틀어막으면 되겠지 했는데 잠수함에서 쏘아올리는 미사일 실험과 가공할 위력의 핵실험은 계속됐다. 대한민국의 대 북한정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극과 극의 선택이었다. 강과 온, 완과 급의 조절도 적어도 국민이 아는 한은 없었다.
8월말부터 9월2일까지 함경북도 무산군 등 북부지역 대홍수. 일주일 후인 9월9일 함경북도 길주군 퐁계리에서 5차 핵실험. 모두 북한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이에 대한 대응은 또 우리에게 숙제다.
북한 관영통신은 이번 홍수를 “해방 이후 가장 큰 재앙”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핵실험 닷새 전에 유엔대표부를 통해 홍수의 피해상황을 알리고 국제사회의 긴급지원을 요청했다. 그리고 이틀 후의 핵실험은 대한민국 정부의 발표와 외신을 종합할 때 북한이 이제까지 실시한 핵실험 중 가장 규모가 컸다.
홍수피해 지역과 핵실험이 이루어진 곳 사이의 거리는 100킬로미터 가량이다. 피해지역에서 수백킬로미터 떨어진 동해안 강릉과 속초, 고성 등 해변가에 북한 홍수의 잔해들이 조류에 밀려 떠내려 왔다. 해당화 치약, 딸기우유 등 북한산 포장재들이 홍수피해가 심했다는 증거물이다. 경주에서 지진이 나자 전국에서 진동을 감지할 수 있을 만큼 작은 한반도에 인재와 천재가 끊이질 않는다.
핵실험이 즉각 세계에 알려진 반면 홍수 피해는 그 뒤였다. 한국의 정치권과 언론은 일제히 홍수 문제를 꺼냈다. 도울 것인가, 외면할 것인가. 북한정권의 뻔뻔함이 물론 도마 위에 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수 피해 북한주민들을 돕자는 쪽으로 결론을 내고 있다. 다시 각론이 문제다. 어떻게 도울 것인가. 인도주의, 민족애가 제대로 전달될 것인가.
북한의 핵이나 크고 작은 도발에 대하는 반응도 각론에서 쪼개진다. 북핵폐기 서명운동은 좋은 예다. 한국의 예비역 장성과 서경석목사 등이 지난 2월 한국서 ‘북핵 폐기를 위한 천만인 서명운동’을 발족하고 미주 4대 도시 한인사회로 그 조직을 넓히고 있다. 워싱턴, 뉴욕은 이미 지난 7월 중순 발족했고 시카고는 오는 23일 발족 예정이다. 한편 대한민국 제향군인회는 지난 3월말 ‘북핵폐기를 위한 백만인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이어 시카고의 중서부 재향군인회가 최근 이 백만인 서명운동에 동참했다. 5차 핵실험이 이 운동에 탄력을 실어줬다.
북한의 핵 보유와 실험이 한반도의 안녕과 인류의 평화를 위협하는 한 이의 폐기를 위한 서명운동은 뜻이 좋다지만 백만인에 서명하면 천만인에 포함되는 것인지, 천만인에 동참하면 백만인은 뭔지, 천만이든 백만이든 그 서명은 어디에 쓸 건지, 그 서명 과정 자체가 목적인지 헷갈린다.
두 주체의 성격은 물론 다르다. 한쪽은 시민운동 성격을 띠고 있고 다른 한쪽은 군인 출신의 안보단체다. 이렇듯 같은 목적의 서명운동이 동시에 이워질 때엔 조정이 필요하다. 서명운동 그 자체로 북핵 폐기 홍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어디에든 서명하면 된다고 안내할 필요가 있다.
마침 시카고에까지 확대된 민간운동을 예로 들었지만 북한을 대하는 정책이 5년 주기로 바뀌고 각론에서 부딪치고 일관성을 잃어서는 앞으로도 반복될 북의 도발과 주민들의 고통을 동시에 해소할 방법찾기는 요원하다.
<
도태환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