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남아 수상가옥 거주자들의 유전자 변이 놀라워
▶ ■ 바다 속을 적응한‘바자우’

200피트가 넘는 물속으로 뛰어드는 바자우 잠수부들에게 장비라고는 나무 고글 하나뿐이다.

술라웨시의 바자우 잠수부가 작살로 물고기를 잡고 있다. [사진 Melissa Ilardo]
인간은 진화의 산물이다. 수십억년 전에 일어난 진화만이 아니라, 우리의 유전자를 깊이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지난 몇 천년 동안에도 인간 진화의 예를 발견하고 있다. 예를 들어 티벳과 에티오피아의 고원지대 사람들은 높은 고도에서 사는 삶에 적응했다. 동아프리카와 북유럽의 목축민들은 우유의 소화를 돕는 돌연변이를 갖게 됐다. 그리고 바로 지난달 한 연구팀이 새로운 종류의 적응을 셀(Cell) 저널에 발표했는데, 공기나 음식이 아닌 바다에 적응한 사람들이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의 공동체에 산재해 있는 수십만명의 바자우(Bajau)가 그들로, 동남아시아의 바다에서 전통적으로 수상가옥을 짓고 살아온 이들이 특별한 잠수부로 진화한 것이다.
오랫동안 바자우들을 연구해온 하와이 대학 인류학자 로드니 C. 주빌라도 박사는 필리핀의 사말 섬에서 성장하면서 바자우를 처음 만났다. 그들은 잠수부로서 작살로 물고기를 잡거나 조개류를 캐면서 생계를 유지했다.“이 사람들이 지역 섬 주민들보다 물속에 훨씬 더 오래 머물 수 있다는 사실에 매료되었다”는 주빌라도 박사는 “말 그대로 바다 밑을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인류학자들이 바자우 문화를 연구하면서 생물학자들도 이들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바자우 잠수부들은 200피트가 넘는 물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이들이 갖춘 장비라고는 나무 고글 하나뿐이었다. 이는 생리학적으로 경이로운 일이다.
2015년 바자우에 대해 알게 된 코펜하겐 대학의 유전학 전공 대학원생 멜리사 일라르도는 수세기에 걸친 잠수가 이런 진화를 이끌어낸 것인지 알아보기로 했다. 인도네시아의 술라웨시까지 여행한 다음 산호초 섬으로 가서 바자우 마을에 도착한 그녀는 바자우들에게 연구를 제안했다. 이들이 동의하자 일단 돌아갔다가 몇달 후 다시 온 그녀의 손에는 바자우들의 비장 크기를 측정하기 위한 휴대용 초음파기계가 들려있었다. 사람들이 물속으로 뛰어들 때는 소위 말하는 잠수반사 반응이 일어난다. 심장 박동수가 느려지고 혈관은 수축함으로써 혈액을 중요기관으로 이동시키는 것이다. 비장 또한 수축하면서 산소가 풍부한 적혈구를 혈액 순환에 분사한다.
모든 포유류는 잠수반사를 하지만 바다표범 같은 해양 포유류는 특히 강하다. 과학자들은 이 반사작용이 더 깊이 잠수하도록 돕는다고 추측한다. 비장이 큰 바다표범이 더 깊이 잠수하기 때문이다. 비장이 커지면 더 큰 스쿠버 탱크의 기능을 갖는 것과 같다. 일라르도 박사는 바자우 사람들의 복부를 정밀 검사한 후 내륙으로 약 15마일 들어간 살루안 농부 마을에 가서 그곳 사람들의 복부 역시 검사했다. 두 마을의 스캔을 비교했을 때 일라르도 박사는 극명한 차이를 발견했다. 바자우는 살루안보다 평균 50% 더 큰 비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놀라운 차이가 진화의 결과는 아닐 수도 있다. 잠수 자체가 어떻게든 비장을 확장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인체의 변형은 발의 굳은살에서부터 불룩한 알통이 생기는 것까지 수많은 예들이 있다. 바자우 중에서도 일부만이 풀타임 잠수부들이었고, 교사나 상점주인 같은 다른 바자우들은 한번도 잠수해본 적이 없었는데도 그들 역시 큰 비장을 가지고 있었다. 일라르도 박사는 바자우가 유전자 때문에 그렇게 태어난 것 같다고 결론지었다.
일라르도는 바자우와 살루안의 DNA도 추출했으며 각 마을의 유전자 변이를 살펴보고 그들을 뉴기니와 중국 등의 이웃 나라 사람들과 비교했다. 그녀는 바자우 사람들에게 많은 유전자 변형이 이례적으로 흔한 것을 발견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가장 그럴듯한 유일한 방법은 자연도태(혹은 자연선택)다. 변형 유전자를 가진 바자우는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더 많은 후손들을 가지고 있었다.
PDE1A라고 불리는 유전자의 한 변종은 바자우 사람들의 비장 크기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잠수가 위험하기 때문에 자연선택이 바자우의 비장 유전자 변형을 선호하게 된 것이라고 추측한 일라르도 박사는 이 유전자가 아니었다면 그들은 죽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진화적 변화가 얼마나 빨리 일어났는지 분명하지 않다. 일부 연구원들은 1600년대 중국에서 해삼 시장이 개장했을 때 바자우가 처음으로 깊이 잠수하기 시작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혹은 수천년 전 빙하기 말에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인도네시아 주변 지역이 섬으로 변했을 때 적응이 시작되었을 수도 있다.
일라르도 박사는 바자우들에게 잠수를 돕는 다른 많은 유전자들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이를 좀더 확실히 연구하기 위해 조만간 또다시 술라웨시로 여행할 계획이다. 아름다운 해안 마을에서 바자우 사람들을 연구하는 일은 평생해도 좋을 만큼 즐겁다고 그녀는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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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New York Tiems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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