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군유해 발굴과 신원확인 절차는
▶ 하와이 소재 미국방부 전담 연구소, 전쟁정보 토대 발굴지 현장 조사

지난 7월 27일, 북미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미군 유해가 송환된 가운데 이날 오산 미군기지를 이륙해 북한 원산으로 갔던 미군 C17 글로브마스터 수송기가 미군 유해 55구를 싣고 전투기 2대의 엄호를 받으며 오산으로 복귀했으며 샘 리 군목이 미군 유해들을 향해 조의를 표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 조사관들이 2015년 팔라우에서 추락한 미군 조종사의 유물을 확인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북한이 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을 맞이한 지난 7월 27일, 북미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미군 유해를 송환했다.
이날 오산 미군기지를 이륙해 북한 원산으로 갔던 미군 C17 글로브마스터 수송기가 미군 유해 55구를 싣고 전투기 2대의 엄호를 받으며 오산으로 복귀했다. 수송기에는 유엔사 관계자들과 미 국방부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DPAA)의 전문가들이 동행했는데 이를 계기로 미군 전사자 유해발굴과 신원확인절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8월1일 추모식 직후 유해는 신원확인작업을 위해 하와이에 위치한 DPAA로 옮겨졌다. 하와이에 있는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 산하 연구소는 유해를 받아 유전자 감식과 치아 식별 등 여러 작업을 통해 신원을 먼저 확인한다. 이번에 인도된 미군 유해 55구를 담은 관에는 유골들과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유력한 증거들이 포함되어 있다.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의 유해 신원확인 작업은 빠른 경우 몇 달이 걸리지만, 여러 해가 걸리는 경우도 있다. 유해 신원이 최종 확인되면 국방부에서 실종자를 담당하는 부서에서 서류 작업을 거쳐 전사자 가족에게 통보한 뒤 함께 장례 절차를 협의한다.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은 2차대전이후 전쟁중에 사망한 수만명에 달하는 미군 전사자나 실종자들을 찾고 식별하는 일을 전담하고 있다.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에서 유해 확인 업무를 전담하는 폴 에마노프스키 박사와의 대담을 통해 지난 2002년부터 미국이 실종한 미군을 찾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실제로 신원 확인을 위해 어떠한 단계를 밟고 있는 지 알아본다.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이 추진하는 유해 발굴 작업은?
▲일본의 1941년 진주만 기습공격 당시 오클라호마 구축함에서 전사한 400명 전사들의 시신을 발굴했으며 1943년 타라와 전투에서 전사한 94명 해병대의 시신도 발굴했다. 솔로몬제도의 캘리포니아 구축함과 웨스트 버지니아 구축함에서 전사한 병사들의 시신도 수습했다.
-얼마나 많은 미국들이 아직도 실종상태인가?
▲한국전부터 현재까지 7,600명 이상이 아직 실종된 상태이고 2차세계대전부터 현재까지는 7만3,000여명이 실종됐으며 월남전부터 현재까지는 1,597명이 실종상태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어디에서 유해를 찾을 지를 어떻게 결정하는 가?
▲리서치팀과 조사팀이 보통 함께 외부에 나가서 조사를 실시한다. 일단 충분한 정보를 모으면 실종 미군의 유해가 묻혀있을 만한 곳에 관한 장소 정보를 주요 발굴자 명단에 포함시킨다. 보통 전쟁당시 군대의 이동과 숙영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등을 알아볼 수 있는 병참, 당시 시간, 물자 외에 유해발굴과 관련될 만한 여러 요소들을 첨가한다. 동남아시아에서 이러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데 아직도 할 일들이 많다. 이곳의 토양은 주로 산성이며 일반적으로 우리는 뼈의 조그마한 조각까지 취급한다. 유해 보존이 잘 될 것 같지 않은 지역을 먼저 우선순위로 둔다.
-얼마나 많은 신원조회작업을 할 수 있는 가?
▲처음에 이 작업을 시작했을 때는 월남에서 수습한 유해들을 보통 한 주에 2건 정도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미군 시신발굴 및 신원조회 작업을 거의 100년 가까이 하고 있다. 그러나 의회는 우리가 두 배의 성과를 내도록 강요하고 있으며 실제로 지난해 201구의 유해를 수습해 신원조회작업을 마쳤다.
오클라호마 구축함의 경우 하와이 국립묘지에 46개의 무덤이 62개의 관과 함께 안치되어있다. 수주전에 우리는 사망자 가운데 149명의 신원을 밝혀냈다. 오클라호마 프로젝트는 뒤죽박죽으로 현재까지도 개인별 유물들은 함께 섞여있는 상태이다. 고고학적 데이터, 좌측 상완골과 우측 상환골을 비교하는 페어 매칭 등의 기법을 사용하여 유해의 신원을 알아낸다. 그리고 DNA도 상당히 큰 역할을 한다.
-어떤 종류의 성과가 한국전쟁 실종자들을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되었는가?
▲하와이 국립묘지에 800여명의 한국전 참전미군 병사유해가 묻혀있다. 2001년에 유해발굴을 시작했을 때 유골에서는 DNA를 검출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나중에 그 당시 한국전 참전용사는 결핵을 첵업하기위해 가슴에 방사선을 찍은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한 병사들의 엑스레이들이 고문서에서 발견했다.
아직까지 실종상태인 7,600명의 군인들 가운데 72%의 방사선 사진을 가지고 있다. 이를 토대로 쇄골과 상측 가슴의 척추골을 봄으로써 식별이 가능하며 하단 쇄골의 이미지와 실제로 현장에서 파낸 해골의 유적을 비교함으로써 시신들의 신원을 확인하고 있다. 특히 DNA가 큰 도움이 된다. 한국전 실종자들의 유족가운데 92%로부터 DNA를 검출했는데, 그것이 신원을 확인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북한에서의 발굴작업과 베트남에서의 작업을 비교하면?
▲2002년에 북한 조신 저수지 위에서 유해 수습작업을 했는 데 보통 작은 무덤과 여우굴에 매장한 시신 등이다. 다섯 구의 시신을 한꺼번에 발견한 경우도 있다.
동남아시아에서는 주로 비행기 잔해들을 찾는데, 유해들을 찾기위해 더 광범위한 지역을 수색해야한다. 유해들의 형태는 보통 더 작은 조각의 뼈와 치아들이 남아있다.
-북한에서 얼마나 많은 유해들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가?
▲1990년대에 208개의 유해 상자들을 북한으로부터 받은 것처럼 똑같은 과정을 밟을 것이다. 그러나 90년대로 돌아가자면 DNA는 이러한 종류의 일을 하는데 단지 시작일 뿐이다. 그리고 결과물을 도출하는 과정은 매우 느리다. 유해에서 DNA를 찾아내는 것이 어렵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며 아마 성공률이 90%에 가까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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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The New York Times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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