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그의 책에서 “인류의 농업혁명 이후로 대다수의 농부는 자기가 생산한 잉여생산물에 대한 권리가 전혀 없었다. 잉여 농산물은 세금이라는 이름으로 착취되어 농부가 아닌 임금, 귀족, 군인들을 부양하는 데 쓰였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1년 365일 동안 열심히 일했지만 심지어는 땅까지 빼앗기고 농부는 결국 소작농으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했다.
지금도 별로 다르지 않다. 한국만 봐도 전체의 1%가 55%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 상가의 임대료는 상상을 초월하고 소위 갑질로 인해 세입자들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경우가 많다. 경제활동이 아니라 무노동 불로소득으로 빠져나가는 돈으로 경제의 활력은 점점 사그러들고 있다. 더 이상 놔두면 대한민국의 활력은 무너질 것이다. 뭔가 획기적인 일이 필요할 때다.
헨리 조지가 오래 전에 이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책을 제시했다. 개인은 자신의 노동생산물을 사적으로 소유할 권리가 있는 반면 사람이 창조하지 않은 것, 즉 자연에 의해 주어지는 토지 등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귀속된다는 것이다. 토지공개념이다. 토지의 개인 소유권 그 자체는 인정하되 그 이용을 공공복리에 적합하게 규제하자는 것이다.
해방 이후 북한의 토지개혁에 자극받은 남한에서도 토지개혁을 실시하였다. 물론 북한처럼 무상 몰수 무상 분배는 아니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혁명적인 조치였다. 민주당 대표 추미애가 언급했듯이 작지만 자기 농지를 가진 농민들은 그 물적 토대 위에서 자식들 교육에 힘쓰게 되었고 왕성한 구매력으로 한국 경제 고도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대들은 어떻게 저 하늘이나 땅의 온기를 사고 팔 수 있는가? 우리로서는 이상한 생각이다. 공기의 신선함과 반짝이는 물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대들에게 팔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땅의 한 부분이고 땅은 우리의 한 부분이다. 향기로운 꽃은 우리의 자매이다. 사슴, 말, 큰 독수리, 이들은 우리의 형제들이다. 바위산 꼭대기, 풀의 수액, 조랑말과 인간의 체온 모두가 한 가족이다. 이것들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대들에게 팔 수 있단 말인가?” 200여년 전 아메리칸 원주민 추장 ‘시애틀’이 땅을 팔라고 한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이다.
그 옛날 정복자는 땅과 노예, 그리고 여자를 소유하였다. 오늘날 노예는 사라지고 여성은 해방되었다. 정복자도 사라졌다. 이제 토지를 제 자리로 돌려줄 차례다. 땅을 포함한 자연은 시애틀 추장의 말처럼 인간의 것이 아니다. 헨리 조지의 지혜가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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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근 매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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