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을까’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오피움 극장(Opheum Theater)에 들어서는 순간, 평일 저녁임에도 객석을 꽉 채운 인파에 놀랐다. 베트남 전쟁의 슬픈 러브스토리라고 하니 한국에서 봤던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이 연상됐지만, 뮤지컬의 충격적인 도입부는 오페라와 뮤지컬의 장르 차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도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었다. 첫 장면은 드림랜드라는 술집에 들어온 킴이라는 여자와 주둔미군 크리스와의 순애보를 그리며 시작한다. 다른 여성들의 퇴폐적인 모습과 달리 아오자이를 입고 나오는 킴의 흰색 옷은 순수를 상징하는, 차별화된 존재임을 잘 표현하고 있었다.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바의 현란하고 노골적인 성적 묘사를 한 연출의도는 충분히 이해하더라도 너무 수위가 높은 묘사는 옥의 티로 보였다.
그러나 이런 후회와 기우도 잠시였고 빠르게 전개되는 뮤지컬의 스토리, 무대효과 특히 주인공들의 열연과 가창력은 첫 도입부의 거북스러움을 종식시키기에 충분했다. 특히 중반부 패전으로 부대 담벼락에 매달려 부르짖는 남은 자들의 피맺힌 절규와 이들을 뒤로하고 헬기를 타고 서둘러 철수하는 미군들의 초조함처럼 요란한 헬기 프로펠러의 소리는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실물모형 절반 크기의 큰 헬기가 직접 무대세트로 등장한 장면은 압권이었다.
특히 전쟁이 남긴 후유증으로 상처받은 여러 사람들, 오매불망 크리스를 기다리고 사생아를 키우는 킴, 철수명령에도 애타게 저항할 정도의 순애보였지만 미국에서 새로운 가정을 꾸린 크리스를 보고 충격을 받고 아들을 포기하지 않으려 저항하다 끝내 아들을 내어주며 총으로 자살을 선택하는 충격적인 장면… 그 아픔이 내 마음에 큰 울림으로 전해졌다.
종전 후 남겨진 수많은 전쟁고아들과 사생아들의 모습들이 스크린에 오버랩될 때, 사회가 감당해야 할 죄책감의 무게가 크게 다가왔다. 전쟁이 할퀴고 간 상처와 아픔은 개인을 넘어 사회 및 세대 간에 대물림되는, 치유불가능한 사회적 트라우마라는 사실을 다시 되새겼다. 이날 관객들의 기립박수는 마치 전쟁의 깊은 상흔을 위로하며 평화를 염원하는 약속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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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씨는 삶을 낙관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가정주부로, 미국이민 후 CBS Children Ministry Teacher로 3년간 재직했으며 현재 월넛크릭한국학교 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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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월넛크릭한국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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