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바다”란 단어는 차갑고, 적막하고, 황량한 느낌과 함께 고된 세파에 시달려 이러 저리 찢긴 인생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약 8년전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머틀 비치에 다녀 온 적이 있는데, 새벽 5시반이면 일어나 태고와 이어진 파도소리와 비릿한 바다내음을 실어 나르는 바람, 때때로 갈매기 울음소리만이 정적을 깨던, 뿌어연 해변가를 가슴이 터지도록 달리던 기억이 난다. 지난주에는 복잡한 삶의 자락을 잠시 내려놓고, 갈등과 다툼으로 피곤해진 마음을 쉬고 싶어서 어머니의 넒은 품 같은 바다, 노스 캐롤라이나의 낵스헤드를 며칠 다녀왔다. 이제는 은퇴자의 신분으로, 수십년전에 이곳에 묻었던 아내와의 추억의 조각들을 홀로 꺼내 보고 돌아왔다.
그곳은 미국에서 아내와 결혼 후 첫번째로 여름휴가로 가서 게 잡이와 낚시를 하던 곳이다. 본인은 한국에 살 때도 낚시를 좋아해서 금강에까지 밤새워 버스로 달려가 민물 낚시를 한 경험이 있지만, 그런 경험이 없었던 아내는 피어(peer)에서 게잡이 망으로 수 많은 게를 계속 끌어올리며 얼마나 신기하고 재미있어 하던지… 캠핑장에 쳐 놓은 텐트 앞 테이블에서 살이 꽉꽉차고 알이 터져 나오는 게를 삶아서 한없이 먹던 젊은 날의 기억이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이번에 같은 피어에 가보니 날씨는 몹씨 춥고, 바람이 엄청 강하게 불어 파도는 허연 이빨을 드러내고 무섭게 표효하며, 성난 파도는 심지어 피어까지도 흔드는 것을 느꼈다. 그와같이 험한 날씨에 단 한 명의 낚시꾼도 보이지 않는그곳에서 홀로 한시간 이상을 버티며 많은 상념에 사로 잡혔다. 한창 시즌에는 피어를 빼곡히 채웠던 낚시꾼들을 떠올리며 외롭게 홀로 버티고 서있는 나의 모습이, 마치도 잘 나가던 인생도 언젠가는 인생의 겨울바다처럼, 모두에게 소외당하고 곧 잊혀진다는 인생의 실체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주었다.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인생의 겨울 바다, 그래서 우리는 전도자의 교훈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전도서 12:1)를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바다 낚시에 얽힌 사연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큰 아들은 낚시를 비롯해 야외활동을 아주 좋아하는데, 네다섯살때부터 낚시터에 데리고 가면 물에 빠지지 않도록 끈으로 허리와 피어의 기둥을 묶고 낚시를 하게 했다. 자동차 여행때면 언제나 낚시대를 우선 챙겼고, 많은 에피소드를 경험하며 큰 애는 자기가 아들을 낳으면 데리고 다니며 낚시를 같이 하겠다고 벼르더니, 지금은 세 딸의 아버지가 되었다. 인생은 역시 자기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요, 생명은 하나님 손에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잘 보여준다 하겠다.
본인은 취미 생활이 많지 않은 편인데, 유독 낚시 만큼은 지금도 가슴이 설레일 정도로 좋아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낚시의 어떤 면 때문에 그러한 열정을 가지는가 반문해 보았다. 그 대답은 “간절한 기대감”이 아닐까? 미동도 않던 낚시대가 어느 한순간 확 휘어질 것을 간절히 기대하며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긴장된 기다림, 그것은 마치 등잔에 기름을 가득 채운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신랑 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그런 비슷한 심정이 아닐까? 낚시터에서 늘 느끼지만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신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간절함이, 고기가 잡히기를 기다리는 간절함에도 못미치는것 같아 나는 스스로 얼굴을 붉히곤 한다.
<
박찬효 약물학 박사 MD>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