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자에게는 그들만의 선호하는 무대가 있다. 크고 화려한 무대를 좋아하지 않는 연주자가 누가 있으랴만 관객과 호흡하며 일체가 되는 무대를 특별히 더 좋아하는 연주자도 있고 혼자 하는 연주를 선호하는 연주자, 여럿이서 하는 연주를 선호하는 연주자, 음악 장르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연주자 등 연주자마다 각양각색이다.
11월 초, 내게 한통의 메일이 왔다. 리처드 용재 오닐이라는 한국인이 너무나도 사랑하는 비올리스트인데 그를 위한 리사이틀을 기획하면서 귀한 인연을 맺게 된 연주자이다. 메일의 내용은 네가 살고있는 이 지역에 작은 연주회를 위해서 다시 왔으니 시간이 된다면 꼭 와줬으면 좋겠다라는 것이었다. 한달만에 보는 그가 반갑기도 하고 지난 리사이틀 때에는 공연의 호스트로서 각종 준비와 점검 때문에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던 그의 음악을 직접 다시 볼 수 있다는 설렘에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가게 되었다.
근사한 극장이 아닌 팔로알토의 도서관 안의 작은 커뮤니티 홀에서 4중주 악단의 일원으로 현대음악을 연주하는 용재 오닐의 모습은 한눈에 봐도 행복과 즐거움 그 자체였다. 자칫 어렵고 지루할 수도 있는 현대음악을 각각의 연주자가 70명도 채 안되는 관객들의 이해를 돕는 설명을 곁들였을 뿐만 아니라 최고의 실력과 환상의 호흡을 보여주는 연주로 청중들을 매료시켰다. 그가 연주하는 내내 지은 행복한 표정에 나 또한 절로 행복해졌고, 잘 모르는 생소한 저 음악을 가야금으로 표현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과 함께 나도 저런 무대에서 즐겁게 연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가진 무대의 공백은, 어린나이에 데뷔를 하여 단거리를 전속력으로 질주하듯 달려온 그 시절 깊이 생각하지 못했던 나의 음악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더불어 그때에는 알지 못했던 음악에의 갈증도 무대의 소중함도 느끼게 했다.
단 한 명의 관객이 있는 무대도, 백 명, 천 명이 있는 무대도 그 어느 것이 더 소중하다고 무게를 둘 수는 없다. 설령 한 명의 관객이 있어도 그 무대를 위해 들여야 하는 노력과 시간 정성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음악을 사랑하고 음악 자체를 존중할 수 있는 문화가 이곳에도 자리잡아 연주자들에게 더 좋은 기회와 함께 관객으로서도 훌륭한 무대들을 많이 접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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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화영(가야금 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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