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북가주의 겨울은 비가 조금씩 오면서 시작된다. 촉촉해진 길거리를 운전하고 다니다 보면 붉고 노란 단풍을 보게 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가을이면 베이지역 신문기사에 난 울긋불긋한 단풍사진 한 컷에 마음이 동해, 단풍구경을 하러 골든 게이트 파크나 멀리는 요세미티까지 다녀오곤 했었다.
하지만 막상 가보면 짙은 녹색의 상록수들 사이로 드문드문 낙엽처럼 색이 변한 몇 그루의 노란색을 좀 보고 왔을 뿐, 사진처럼 예쁜 단풍은 찾아 볼 수 없었다. 결국 헛수고를 하고 돌아온 집 앞 동네에서 색 고운 나무들을 보고서야 ‘너무 멀리서 찾았네, 단풍을…’ 하고 생각했었다. 한국과는 너무나 다른, 생소한 경관의 베이지역이지만 유독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이맘 때의 촉촉함은 내가 기억하는 한국의 가을과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어디에도 없는 단풍을 찾는 여행을 하게 만든다.
그뿐만이 아니다. 결혼 초기에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친정 엄마표 김치와 한국산 참기름, 들기름을 비롯한 온갖 양념들을 한국에서부터 이고지고 오곤 했는데, 짐을 싸는 것부터 집에 도착할 때까지 참으로 고된 일이었다. ‘언제쯤 나도 기내용 가방 하나 달랑 들고 가뿐히 비행기를 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만 매번 별 수 없이 또 친정엄마께서 챙겨주시는 귀한 것들을 가방 구석구석 꽉 채워 끌고 오고야 만다. 어쩌면 이곳에서는 결코 맛 볼 수 없는 엄마의 음식에 대한 그리움이 더 그 식재료들에 집착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30년을 한국에서 살았고, 이제 미국에서 산 지 10여년이 되어 간다. 나름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곳에 적응을 한다는 것은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지나보니 한국에서의 추억이 깃든 소소한 물건들에 집착해 헛되고 무리한 노력들을 하며 살았다. 그러다가 한 해 한 해가 지나면서 이제는 놓아주는 것들도 생겼다. 김치를 직접 담든다던지, 한국마트에 구비된 수많은 물건들로 위로 삼는다.
아스파라거스를 콩나물처럼 무쳐 먹고 토마토로 겉절이를 해 먹다가 문득, 이정도면 한국과 이곳을 제법 잘 버무리고 있다는 생각도 한다. 그동안의 무모한 노력들을 하나씩 내려놓고, 이렇게 대체품을 찾아 적당히 타협을 하는 것이 이곳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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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섬유조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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