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가장 존경하는 역사적인 인물을 꼽으라고 하면 아브라함 링컨, 존 F 케네디, 마틴 루터 킹 목사가 1위에서 3위를 차지한다. 이처럼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미국인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남아있는 역사적인 인물이다. 지금도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있는 ‘마틴 루터 킹 목사 기념관’에 가보면 그의 정신이 온 누리에 꺼지지 않은 채 타오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1963년 8월28일은 미국 비폭력 인권운동에 있어 가장 중요한 날이었다. 25만 명의 군중들이 모인 가운데 열린 워싱턴대행진(The March on Washington)에서 킹 목사는 ‘I have a dream’이라는 역사적인 연설을 하게 된다.
“저는 조지아 주의 붉은 언덕에 노예였던 사람의 자손과 노예 소유주의 아들이 같은 식탁에서 음식을 먹을 때가 언젠가는 올 것이라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언젠가는 나의 4자녀가 피부 색깔이 아닌 인격으로 평가받는 나라에서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유를 울려 퍼지게 했을 때 우리가 모든 마을에서 모든 고을에서 모든 주와 도시에서 자유를 울려 퍼지게 했을 때 우리는 더 빨리 그 날로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인 흑인, 백인, 유대인, 이방인이 손에 손을 잡고 흑인영가의 가사와 같이 우리는 드디어 자유를 찾았노라 하는 찬송을 부를 수 있는 날이 속히 도래하리라 믿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연설은 미국인들을 포함 전 세계인들을 감동시켰고 인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 행사에서 백인과 흑인, 유대인, 소수 민족 등이 모든 장벽을 무너뜨리고 어깨를 마주하며 행진을 하게 된다. 이듬해인 1964년 킹 목사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1967년 베트남전쟁 반대운동을 벌이다가 그를 지지했던 백인들과 흑인 지도자들조차도 등을 돌리는 사태를 맞게 된다. 킹 목사는 이때부터 정신적인 압박을 받기 시작했고, 암살 위험을 무릅쓰고 연설을 강행하다가 제임스 얼 레이에 의해 암살당하게 된다.
킹 목사가 세상을 떠난 지 15년이 지난 1983년 1월 3번째 월요일에는 킹 목사의 정신을 기리면서 ‘마틴 루터 킹 데이’라는 연방 법정 공휴일이 제정됐다.
킹 목사가 남기고 간 삶의 자취는 너무나 분명하다. 첫째 흑인들의 민권보호, 둘째 빈곤층에 대한 새로운 이해, 셋째 소수민족에 대한 참정권보호 등 미국 현대사에 없어서는 안 될 일을 한 것이다. 킹 목사는 인간에게 깊이 뿌리박혀 있는 인종적인 편견과 선입견을 없애기 위해서 그의 일생을 바친 것이다.
“날 수 없다면 뛰어라. 뛸 수 없다면 걸으라. 걸을 수 없다면 기어라. 앞으로 뭘 하든지 간에 앞으로 나아감을 멈추지 말라” -마틴 루터 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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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웅 워싱턴 하늘비전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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