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년을 살아보니’라는 책에 “우리 민족성 가운데 가장 시급히 고쳐야 할 단점이 무엇입니까?”에 답한 글이 있다. 1920년에 평양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공산 치하, 남북전쟁을 겪고 연세대 철학과 교수로 은퇴한 후 2016년 97세에 쓴 글이니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인 김형석 철학자는 “나는 망설임 없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시급한 것은 절대주의적 사고방식을 뒷받침하는 흑백논리일 것”이라고 답했다. 국제기구에서 일하며 여러 나라가 어떻게 다른지 경험해 온 나는 이러한 그의 진단에 동의한다. 최근에 경험한 한 예를 나누고자 한다.
최근엔 경제적, 사회적 개발을 위해 민간 기업과 공공 기관의 협력 (Private-Public partnership)이 강조된다. 2017년 봄 뉴욕에서 블록체인 행사가 열렸을 때 중국과 호주 등은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이 연합하여 참석해 자신들의 기술을 광고했고,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세계은행-IMF의 연례총회, 세계경제포럼 등등의 행사에 자신의 나라 사람이 발표할 기회를 얻고자 많은 나라가 현지 대사관 및 각 기관의 고위직 인사 등을 통해 물밑작전을 펼친다. 2017년 봄 세계은행-IMF의 연례총회에서 일주일간 총 72개의 행사 가운데 한국인의 이름이 하나도 없어 미주 한국일보에 ‘꿈’이라는 글을 낸 바 있다.
당시엔 전 세계의 많은 기업인이 토론자로 참석하는데 한국인이 없는 것은 그런 인물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앞으로 이런 세계의 주주총회에, 한국인도 세계의 모든 사람과 자랑스럽게 나눌 수 있는 꿈을 애써 이룬 이가 많아져서 당당히 세계의 주인행세를 할 수 있기를 꿈꾼다”고 했다. 곧 그런 인물을 드러나게 하는 것은 공공기관의 협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다른 나라들을 지켜보며 배웠다. 그래서 지난 2년간 빈곤퇴치와 번영의 공유라는 세계은행의 목표에 부합한 한국의 민간기업을 찾는 것과 함께, 그런 기업인을 만나면 관련 공공기관의 협력을 이끌어내려 애써왔다.
한 예로, 최근 파키스탄 중앙은행장이 파키스탄 민간기업과 금융기관이 중국 Ant Financial의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해 국제 송금이 혁신적인 기술로 간편하게 되었다는 것을 기념하는 행사에 참석해 연설하였고 그 연설이 중앙은행들의 국제중앙은행이라 불리는 BIS에 실려 전 세계에 알려졌다. 이것을 보고 한국의 Harex Infotech라는 기업이 혁신적인 기술을 바탕으로 UBPay라는 모바일 결제와 송금 플랫폼을 인도네시아 및 여러 나라에 진출하는데 한국은행도 그런 기념행사에 참석해 한국의 기술력을 더 널리 알리는 목소리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물어보았다.
공공기관의 답은 한결같았다. “우리 기관은 특정 민간기업을 홍보하는 역할은 하지 않습니다.” 한국의 공-사 협력은 밀착하여 부패한 거래를 만들어내는 흑의 세계와 전혀 관계치 않으려는 백의 세계로 나뉘어있다. 기업을 홍보해 그 기업으로부터 비윤리적인 혜택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공공기관의 목표에 부합하는 한 기업의 예로 공적 사명의 중요성과 한국의 이미지를 높일 수 있다면 기업의 행사에 참석해 공공기관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국가를 홍보하는 것이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길일 수 있음을 모르는 것일까.
흑과 백 사이에 수많은 색을 바라보고, 때로는 새로운 색을 창조할 수도 있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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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윤정 맥클린,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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