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치기’는 본래 ‘남의 물건을 잽싸게 채어 달아나는 짓’으로 소매치기 수법이다.
날치기라는 단어는 1950년대 중반부터 국회의 변칙 안건 처리를 비판하는 용어로 쓰였다. 1956년 2월 자유당의 기습 작전으로 지방자치법이 처리되자 민주당의 한 의원은 국회에서 “협잡·날치기로밖에 볼 수 없다”고 성토했다.
다수 의석을 확보한 정치 세력이 여야 합의나 정상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안건을 처리하는 것을 날치기라고 한다. 이를 두고 언론들은 ‘단독 처리’ ‘변칙 처리’ ‘강행 처리’ 등 다른 표현을 쓰기도 한다.
날치기의 역사는 이승만 정부 시절의 발췌 개헌과 사사오입 개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2년 7월 부산 피난국회 당시 국회의원의 상당수가 경찰에 연행되는 등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이승만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은 대통령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발췌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박정희 정부의 대표적 날치기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3연임을 가능하게 한 3선 개헌(1969년)이었다.
일요일 새벽2시 여당계 의원들만 국회 제3 별관에 모여 개헌안을 변칙 통과시켰다.
유신체제였던 1979년 여당은 신민당 총재였던 김영삼 의원의 제명안을 날치기 처리함으로써 정권 몰락을 재촉했다. 그 뒤에도 유성환 의원 체포동의안(전두환 정부), 방송관계법(노태우 정부), 노동법·안기부법(김영삼 정부), 정부조직법·국회법(김대중 정부), 사립학교법(노무현 정부), 미디어법·한미FTA 비준안(이명박 정부) 등이 강행 처리됐다.
김영삼 정부는 1996년 12월 노동법·안기부법을 날치기 처리한 뒤 환호했으나 한 달 뒤 한보 사태 등이 터지면서 급속도로 레임덕 늪에 빠져들었다. 여야는 몸으로 정면 충돌하는 과정에서 해머·쇠망치·빠루·전기톱·쇠사슬·최루탄·소화기 등 기상천외한 장비들을 총동원했다.
‘동물국회’에 대한 비난이 빗발치자 여야는 2012년 5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제도 등을 도입하는 국회선진화법을 통과시켰다.
그로부터 7년 뒤인 지난 4월 말 여야는 선거법 등 4법의 패스트트랙 지정을 놓고 한바탕 전투를 벌였다.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 강행에 대해 자유한국당은 “불법 날치기”라고 비난했으나 더불어민주당은 “한국당이 불법으로 저지했다”고 반박했다.
‘날치기는 없다’라는 책을 내고 이를 의장 재임 중 실천했던 이만섭 전 국회의장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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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덕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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