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에 내가 일하는 세계은행에서 2018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무퀘게 박사(Dr. Denis Mukwege)의 발표가 있었다. 그는 콩고 민주 공화국의 산부인과 의사로 병원을 창립해 무장 반란군에 의하여 강간을 당해온 여성들의 치료에 일생을 바쳐왔다. 한 시간이 넘는 대담 중에 그는 한국을 방문해 위안부를 만났던 경험을 언급했다. 한 위안부 할머니가 성적 학대를 당하고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한 이들에 대해 얘기를 했는데 콩고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며. 이런 극한 상황에 처했던 여성들의 삶에 비하면 현재 여성의 삶은 많이 좋아졌다고 자족할 수 있을까?
5월에 들어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한 달 여가 지나 정신을 조금 가다듬으신 엄마는 관공서와 법무사 사무실을 다니시느라 바쁜 날을 보내고 계시다. 아버지의 사망 신고와 연금 관련 요구되는 서류가 엄청나다고 하신다. 지난 수십 년 간 함께 살아오신 집이 아빠 명의로 되어 있어 오십년을 넘게 함께 산 배우자인 엄마에게로 명의를 이전하는데 이런저런 서류를 요구한단다. 설상가상으로 명의이전 세금만 8백만원이 넘는다고 걱정을 하셔서, 가뜩이나 수심으로 약해진 심신이 무너지실까 먼 이국땅에서 아침저녁으로 전화를 드리는 나는 노심초사다.
게다가 아빠는 평생 공무원으로 일하시고 은퇴하셔서 공무원 연금으로 두 분이 지난 이십년 가까이 살아오셨는데 그 연금도 자동으로 배우자에게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단에서 요구하는 모든 서류를 작성해 제출해야만 본인 사망에 따르는 금액을 조정해 줄어든 연금을 수령할 수 있다고 한다. 그나마 줄어든 연금도 서류를 제출할 때까지 중단되어 엄마는 관절염으로 인해 아픈 다리로 절뚝거리시며 관공서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법무사무실을 바삐 오가고 계신 듯하다.
엄마의 경우는 자신을 희생해 애써 키운 세 자녀가 모두 외국에 거주하는지라 그 어려움이 더하다. 미국 국적을 취득해 한국 국적을 상실한 내게는 위임장뿐 아니라 성이 남편 성으로 바뀌어 추가적인 서류들이 요구되었다. 한국 국적은 소실하지 않았지만, 외국에 살아 재외국민으로 분류되는 내 오빠의 경우는 또 다른 서류뭉치들이 보내졌단다. 요구되는 서류는 공증을 받아 아포스티유 오피스에 가 또 다른 절차를 받아야 하는데 워싱턴 DC 동쪽에 위치한 그 사무실은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만 열어서 업무 중에 바쁜 일정을 조정해 빠져나가기가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다.
전화를 할 때마다 서류를 마쳤냐고 물으시는 엄마에게 “왜 그러게 함께 거주하는 저택을 공동명의로 하지 않았느냐?”고 나는 되레 짜증을 냈다. 엄마는 세상물정 모르는 내가 기가 찬다는 듯 “얘, 수십 년 전에 한국에서 부부공동 명의로 집을 등록한 사람이 있었겠느냐?”고 답하셨다. 하기는 세계경제포럼에서 발표한 2018년 각국의 남녀평등 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총 149개국 중 경제적 활동과 기회 평등 지표에서 124위를 차지해 한국 여성의 경제력이 얼마나 취약한지 드러낸다. 교육 평등 100위, 건강과 생존율 87위, 정치력 92위 등으로 전체지표 115위를 차지해 114위를 차지한 시에라리온의 뒤에 나온다.
한국에 여성가족부가 2010년에 들어섰는데 2010년에 발표된 세계경제포럼 각국의 남녀평등 지수에선 한국은 총 133개국 중 104위를 기록했다. 8년의 세월이 지난 후 지표는 더 나빠지고 해마다 여성가족부 폐지 청원에 실린 청원내용을 보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언가 자책하다가, 최근에 여성의 삶과 평등을 위해 돈과 시간을 투자해온 멜린다 게이츠가 ‘The Moment of Lift’라는 책을 내고 한 말을 보게 되었다. “맞서 싸우는 최상의 방법은 말하는 것”이라고.
햇살 가득한 곳에 활짝 핀 오월의 장미꽃을 보며, 어쩌면 말이 씨앗이 되어 바람을 타고 날아가 해결의 열매를 낳게 하지 않을까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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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윤정 금융전문가 맥클린,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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