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인국민회 기념재단은 오는 11월17일 ‘제80주년 순국선열의 날’을 앞두고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지난 10월26일 중가주 리들리와 다뉴바를 다녀왔다. 이번 방문에는 청소년들과 학부모 등 많은 한인들이 참가했다.
이 행사는 자라나는 세대에게 선조들의 역사를 알려주기 위한 뿌리교육의 하나로 마련된 것이다. 순국선열의 날을 앞두고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열리는 ‘뿌리를 찾아 떠나는 독립 사적지 탐방활동’과 ‘견학 기행 공모전’을 위한 여정이었다. 올 행사는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이다.
1919년 3.1 독립운동 이후 중국 상해 임시정부수립 등 해외 독립운동에 지원된 자금의 70%가 우리 미주 선조들의 손에 의해 마련됐다. 그 당시 중가주는 한국 독립운동의 젓줄이었다. 힘들게 일해 번 돈을 조국독립을 위해 쾌척하는 일에 주저함이 없었다.
이곳을 찾아 고개 위에서 베이커스필드로부터 새크라멘토까지를 바라볼 때마다 남다른 감회를 느낀다.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이곳에는 30여 다민족들이 유입되어 농토를 일궜다. 그러면서 기업형 농사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는 한인들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김 브라더스’로 불리는 김호·김형순 형제가 있었다. 형제는 천도복숭아를 개발해 성공했으며, 쌀농사로 성공한 김종림 선생은 사재를 털어 윌로우에 비행학교를 세우기도 했다. 1920년 제1회 3.1독립운동 기념행사가 동부는 필라델피아에서, 서부는 중가주에서 열렸다. 그만큼 중가주는 미주 독립운동에서 중심적 역할을 했던 곳이다. 여성 애국단이 창설되는 등 여성들의 독립운동이 돋보인 곳이기도 하다.
2008년 한국정부의 도움으로 이곳에서 3.1절 시가행진이 재연됐다. 또 최초의 한인교회 자리에 기념비를 세웠다. 그 후 지속적인 관심과 후원으로 서울 서대문의 독립문을 3분의 1로 축소해 세웠으며, 미주의 대표적 독립운동가 열 분의 기념비석도 나란히 서 있다. 지난해엔 리들리시에서 독립문 주변의 주택들 몇 채를 매입해 헐어 깨끗한 공원으로 조성해주었다.
멀리서 찾는 한인들의 단체방문에 시청 관계자들과 경찰들이 나와 경비 및 안내 등을 적극 도와주고 있다. 인근 ‘툴라리 카운티’ 박물관에서는 1년간의 전시로 한국을 소개하는 기회를 갖기도 했다. 중가주 한인 역사연구회의 차만재 교수와 김영욱 교수 또한 오랜 기간 역사 연구와 보존에 힘을 썼다. 이들의 노고에 각별한 감사를 드린다.
이번에도 공동묘지를 찾았다. 지역 해병동지회에서 주변을 잘 정리정돈하면서 보존해 주고 있다. 독립유공자들 중 가족들의 동의에 따라 한국 대전 현충원으로 옮긴 분들도 있으나 아직도 40여구가 쓸쓸히 잠들어 계신다. 가족도 없이 혼자 살다가 돌아가신 분들도 있다. 몇 해 전 그들의 사망 당시 사연을 병원을 통해 알아본 결과 굶어죽은 분들이 상당수라고 했다. 가슴 찡했다.
거북 등가죽 같은 손으로 땀 흘려 일하며 조국의 독립만을 바라본 그분들의 숭고한 삶이 헤아려진다. 이들의 희생과 노고를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하겠다. 순국선열의 날을 앞두고 그런 마음을 다시 한 번 다져보게 된다.
‘밥을 먹어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 잠을 자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라는 도산의 말씀을 떠올려 본다. 그러고 보니 오는 9일은 캘리포니아 주의회에서 제정한 제2회 도산 안창호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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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수 OC흥사단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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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선생이 미국에 와서 조선인들끼리 노상에서 상투잡고 싸우는것을 보고 개탄하고 민족성 개조에 진력하였다. 백년이 지난 지금 달라진게 있는지? 부끄러울 뿐이다.
지금을 사는 우리 모두는 도산 안창호선생 볼 낮이나 있는지를 묻고싶다, 남북은 아직도 낮 밤 가리지않고 쌈박질에 일본 중국 미국으로부터 간섶 수모를당하면서도 눈하니 깜박이지않고 도산 안창호와 유관순 윤봉길...애국선열의 이름을 들먹이며들 있으니, 제발 수단방법 가리지말고 통일로 가는 길 열생각을 제일 먼저 의논하고 생각하고 그렇게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