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 금융그룹의 실적은 좋지만 금융권 임원들의 고민은 깊다. 기술혁신이 금융업을 둘러싼 경영환경을 빠르게 변화시킴에 따라 지금의 금융모델이 5년 후에도 수익의 원천으로 작용할지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금융과는 무관해 보였던 구글이나 아마존·페이스북 같은 기술 메이저들이 기존 금융회사의 생존을 위협하는 테크핀(TechFin·기술 주도 금융혁신) 기업으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금융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중국 등에서는 테크핀의 대표주자인 알리바바나 텐센트가 전통 금융사의 시장지배력을 넘어선 지 오래다.
테크핀 기업들은 우선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하고 플랫폼에서 생성된 광범위한 유저 데이터를 활용해 타 영역으로 서비스를 확장하는 데 능하다. 즉 다른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플랫폼에 접속한 고객들에게 ‘금융’이라는 상품도 구매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것이 플랫폼 비즈니스의 경쟁력이다. 기존 플랫폼 서비스가 검색이나 메신저와 같이 일상생활과 밀접하다면 훨씬 유리하다. 그만큼 고객과의 접점이 넓고 접촉 빈도도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금융상품이 기존 금융서비스와 별반 차이가 없다면 위협적이지 않을 것이다. 테크핀 기업에 혁신성이란 고객의 숨겨진 니즈를 터치할 수 있는 서비스를 의미한다. 필요한 서비스지만 기존 제도권 금융에서 제공할 수 없거나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영역을 개척하는 과정이다.
알리바바나 아마존 같은 기업들이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기반으로 단기간에 금융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은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있다. 개별 고객의 행동패턴을 분석해 그들의 금융니즈를 알아내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금융솔루션을 제공한다. 이것이 전통 금융기관과 차별화된 혁신서비스 제공이 가능한 비결이다.
디지털 생태계의 경쟁우위 원천은 ‘고객경험’이다. 고객 모멘텀이 만들어지면 자연스럽게 시장 모멘텀으로 이어져 그 기업은 성장하게 된다. 아마존의 최고경영자(CEO)인 제프 베조스가 냅킨 위에 그렸다는 ‘플라이휠(flywheel)’ 효과는 고객경험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처음에는 엄청난 추진력을 필요로 하지만 일단 가속도가 붙으면 관성으로 회전하는 구동력이 생긴다. 디지털 생태계에서 구동력(고객경험)이 생기면 고객 모멘텀이 만들어지고 자연스럽게 시장 모멘텀으로 이어져 그 기업은 성장하게 된다. 이처럼 알리바바를 비롯한 테크핀 기업들은 플라이휠 효과 아래 다른 경쟁자들이 쉽게 모방할 수 없는 견고한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해가고 있다.
과거 점포 네트워크를 보유한 대형 은행들이 고객에 대한 경쟁력을 가졌다면, 더 많은 데이터를 보유하고 활용하는 기업으로 성장동력이 이동하고 있다. 이제는 상품 중심의 파이프라인모델에서 벗어나 솔루션 기반의 플랫폼모델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미다. 국내 금융기관들이 디지털 전환에 속도를 내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금융회사도 디지털 금융생태계를 구축하고 지속 성장·확장해갈 수 있는 동력원을 발굴해야만 변화한 금융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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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재은 NH농협생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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