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남부 도시 슈투트가르트 인근에는 아름다운 포도밭들이 평화롭게 펼쳐져 있다.
주변을 달리다 보면 ‘와인 도시(wine city)’를 뜻하는 ‘바인슈타트’를 만날 수 있다. 바인슈타트는 보이텔스바흐 등 5개의 조그만 타운들이 합쳐져 만들어졌다. 인구가 8,500여명에 불과한 보이텔스바흐는 포도주 양조장과 교육으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미국 스탠퍼드대는 한때 이곳에서 해외 캠퍼스를 운영했었다.
조용한 소도시가 세계에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이곳에서 열띤 논쟁 끝에 합의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정치교육원 원장인 지크프리트 실레는 1976년 교육 현장 혼란을 막기 위해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교육자·학자·정치인 10여명을 보이텔스바흐로 초청했다.
1·2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 분단된 독일은 당시 극심한 이념 갈등을 겪고 있었다. 국민들은 이념으로 갈라져 서로 헐뜯었고 진영 대결 증폭으로 학생들은 큰 혼란에 휩싸였다.
두 진영의 대표자들은 이틀 동안 치열한 토론을 벌인 뒤 정치 교육의 원칙에 대한 세 가지 공통분모를 찾아냈다. 3개 항의 ‘보이텔스바흐 합의(Beutelsbacher Konsens)’였다.
첫째 원칙은 강제성 금지이다. 학생들에게 특정 이념이나 가치관을 주입하기 위해 강압적 정치 교육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는 논쟁성 유지다. 사회에서 논쟁이 진행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수업에서도 논쟁 상황과 각 입장이 고루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정치적 행위능력 강화이다. 정치 상황과 이해관계를 고려해 학생이 스스로 시민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합의는 독일 통일 이후에도 교육의 기본원칙으로 존중되고 있다.
한국에서 선거연령 하향 조정이 추진되면서 독일의 교훈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군소야당들은 선거연령을 19세에서 18세로 낮추는 선거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법이 통과되면 고교 3년생도 투표에 참여할 수 있으므로 교실이 선거운동 무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일부 교사의 이념 교육에 휘둘리지 않게 하려면 독일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치 편향 교육으로 논란을 빚은 인헌고 사태 재발을 막으려면 원칙을 지키지 않은 교사에 대한 처벌도 검토해야 한다.
한국판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만들 때가 됐다. 더 중요한 것은 이를 교실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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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덕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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