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 때 전교생이 강당에 모여 세계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김찬삼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지리를 공부하고 1958년 33살 때 미국을 시작으로 3년 동안 59개국을 여행했으며 귀국해서 ‘세계일주 무전여행기’라는 책을 냈다. 4.19와 5.16을 겪은 온 국민에게 그의 여행은 시원한 사이다와 같았다.
나도 그의 이야기에 가슴이 뛰었다. 이듬해 대학 갈 준비를 하는데 박동춘 영어선생님이 다른 학교에 가지 말고 외대 서반아어과를 가라고 콕 짚어주셨다. 나는 그 말씀에 따라 서반아어를 공부하게 됐으며 학교와 군대를 마치고 1977년 근무하던 무역회사의 중남미 지사장 발령을 받게 됐다. 1976년에 결혼해 이듬해 첫 아들을 보고 드디어 꿈에 그리던 남미대륙으로 가게된 것이다.
1978년 아르헨티나에 출장 갔을 때 이야기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일을 보고 저녁에 기차를 탔는데 밤새 달려 새벽 5시 마 델 플라타(Mar del Plata, 은의 바다) 항구에 도착했다. 춥고 배고파 우선 기차역 앞 식당에 들어갔다. 두 노인이 한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주인 영감이 일어나서 주문을 받는다. 다른 손님은 없다. 앉아 있는 노인이 손짓으로 나를 부른다.
“어디서 왔느냐? 무슨 일로 왔느냐?” 마주앉은 나를 보며 종이에 뭔가를 끄적거리더니 나에게 건네준다. 받아 보니 영락없는 내 얼굴인데 형편없이 그려 놨다. 거기에 Lino Palacio라고 서명을 해 놨다. 시답잖은 내 표정을 본 식당 주인이 옆에서 거든다.
“에콰도르에서 산다면서 Lino를 몰라? 만화가, Ramona 만화 못 봤어?” 그때 코주부 얼굴의 만화가 머리에 떠올랐다. “Ah. Si.si si! Me acuerdo.(아, 예, 기억납니다)”
아르헨티나는 물론 중남미 주요 일간신문에 나오는 Ramona 또는 Avivato, Don Fulencio 만화를 그리는 유명인사를 몰라보다니.... 그런데 왜 그는 그 초겨울 새벽에 청승맞게 거기 있었나?
내가 방문 중이던 1978년 6월 아르헨티나에서 월드컵이 열리고 있었는데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군부독재 정부는 평소 정부에 비판적인 만화를 그리던 Lino가 붓을 잡지 못하게 했고 그래서 밤에 잠이 오질 않아 친구의 식당에 가 있었던 것이었다.
그때 나를 보게 되고 근질거리던 손을 풀어 이렇게 그려 놓은 것이다. 그때 나는 33살이었고 그는 지금의 내 나이였다.
출장 떠나기 전날 아내가 가위로 적당히 자른 머리 모양이 그대로 보인다. 그 화가와 헤어지고 고객을 만나고 점심때쯤 거리를 나서는데 사람들이 모두 한 방향을 향해 걷고 있다. 이상하다. 어디를 가냐고 물었더니 코파 델 문도(Copa del Mundo)라고 한다. 월드컵 경기를 보러 가는 것이다. 그들을 따라 경기장 문 앞에 가 서있자니 한 청년이 다가온다. 브라질에서 온 청년인데 친구를 기다리다가 오지 않자 그 표를 나에게 내민다. 그래서 나는 말로만 듣던 월드컵, 스페인과 브라질 축구경기를 보게 되었다. 그때의 입장권과 기념으로 산 넥타이는 리노의 그림과 함께 내 귀한 골동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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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길/ VA, 선교사, 스패니시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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