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동네 도서관에 갔다가 한 섹션을 떡 하니 차지하고 있는 만화 코너를 본 적이 있다. 학창 시절 만화방 한번 가보지 않은 청춘들은 없었을 것이다. 내가 본격적으로 만화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즈음 문화의 선구자였던 K에 의해서였다.
내 기억으로 처음 본 만화는 황미나의 “굿바이 미스터 블랙(83년)”으로 아름다운 그림에 한 남자의 복수와 가슴이 저려오는 애달픈 사랑 이야기에 푹 빠져버렸다. 이 책을 시작으로 김혜린의 “북해의 별(83년)”, 신일숙의 “아르미안의 네 딸들(86년)”, 강경옥의 “별빛속에(87년)” 말하면 입이 아플 주옥같은 책들을 쭉 읽기 시작했다. “아르미안의 네 딸들”은 초등학교 때 읽기 시작했는데 그 완결이 중고등 시절을 거쳐 대학교 때 마무리가 될 정도로 우리들의 애간장을 태우기도 했다. 또한 이현세의 10권짜리 두꺼운 “공포의 외인구단(83년)”을 읽고는 엄지와 까치의 슬픈 사랑에 펑펑 울었던 감정이 아직까지 가슴속에 남아있다. 한국 만화의 황금기인 1980년에 후반 “르네상스”라는 순정만화 잡지가 발간되면서 만화의 시대가 열렸다. 매달 잡지 나오는 날을 기다렸고, 친구들 중에 꼭 한명 정도는 만화가가 되겠다고 맨날 그림만 그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고1때부터 야간 자율학습(이하 야자)이 있어 밤 10시가 되어서 학교가 끝났다. 그 길고 지루했던 야자를 견디기 위해서 우리는 가끔 땡땡이를 쳤는데 땡땡이를 치고 가는 곳이 만화방이었다. 1권에 몇 백원이었던 만화책을 최대한 천천히 읽어야 했다. 적은 돈으로 야자가 끝날 때까지 오래 버티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먼저 만화책을 한번 쭉 훑어보고, 주인공이 되어서 읽어보고, 내가 작가라면 어떻게 썼을까 생각하며 읽어보고, 나중에 만화방이 시간제로 변하면서는 반대로 빨리 많이 읽게 되었지만 말이다. 만화방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고소한 달걀 프라이와 라면 냄새다. 지금도 아쉬운 것은 만화책 보기도 빠듯한 용돈이라 만화방 라면을 먹어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십이 훌쩍 넘은 지금도 만화를 본다. 세상이 변하여 웹툰이라는 형식의 만화책을 보고 있다. 물론 예전에 비해 편하고 쉽게 만화를 볼 수 있지만, 달걀 프라이와 라면 냄새가 나는 만화방에서 천천히 만화책을 보는 것이 내게는 더 낭만적인 일이다.
<김주성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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