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서 40분 정도의 거리라고 했다. 덜컹거리는 차가 드디어 초입으로 들어서자, 우린 자처해서 지프에서 내렸다. 황톳길로 난 지구의 자잘한 굴곡을 사뿐히 밟고 가는 길, 초원에 우뚝 선 고목이 이방인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평균둘레 10미터에 높이가 20미터나 되는 나무는 어깨 위로 푸른 하늘을 떠받치고 서 있다. 족히 500년도 넘은 거대한 나무가 군락을 이루며 자라나는 이곳은 아프리카의 소행성, 마다가스카르의 바오밥 군락지다.
사바나의 척박한 땅에서도 천년 이상을 살아간다는 바오밥나무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부족에게 어머니같은 나무다. 깊은 뿌리와 줄기에 저장해 둔 물로 가뭄에 사람을 보호하고 열매와 꽃과 잎, 껍질로 주변 동물을 거둔다. 나이를 먹을수록 속을 비워내는
지혜가 있어 그늘과 피난처를 마련해 주기도 한다. 길을 꺾어 들어가자 특별한 표식의 나무가 있다. 아모르 바오밥(Baobab de Amour). 날 때 둘이었으나 결이 통해 하나가 된 일종의 연리지(連理枝)다. 스치면 인연이요, 스미면 연인인가? 함께 꼬여 있는 모습이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부둥켜안고 있는 것 같아 붙여진 이름이란다. 나는 녹록지 않은 삶의 무게를 복기라도 하듯, 이들이 서서 비바람 맞은 세월을 먼저 헤아리게 된다.
해가 낮아지자 하늘은 시시각각 색을 바꾸어가며 서둘러 일몰을 준비하고, 저무는 날과 함께 나무도 땅도 사람도 함께 물들어 간다. 아름다움을 넘어 장엄하기까지 한 색채의 향연, 마침내 감청색 하늘에 불타는 듯한 노을이 치명적인 보색의 장관을 이루더니 석양은 서서히 대지를 지나 소실된다.
어둠이 내린 적막한 초원, 고요하다. 조도가 낮아질수록 더욱 선명하게 자신을 드러내며 견고하게 서있는 나무, 숲의 어머니 레날라(Renala). 각별한 일몰이었다. 그러나 붉은 색 빛의 산란에 흔들렸던 건 사람의 마음일 뿐 비범한 풍모의 나무는 아무 말이 없다. 어둠 속에서 갈길을 모르는 마음. 길을 똑바로 걷기 위해서는 저 대지의 끝과 같은 마음의 바닥을 디뎌보아야 하는 일. 불현듯이 시간이 멈추고 전율이 일어선다. 황량한 초지를 가르는 공기, 붉은 해, 그 뒤에 오는 어둠. 누군가 까마득하게 멀어지는 풍경 속으로 썰물처럼 들려오는 바람소리, 다시 적막함.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감동적으로 만드는 레날라의 침묵 속을 나는 천천히 거닐고 있었다.
<신정은 (SF한문협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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