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한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지금의 현실을 맞고 보니 지난해 9월 소박한 하루 여행은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날 아침 10시경 그레이트아메리카 역을 출발한 빨간색 이층열차는 우리를 싣고 목적지인 올드 새크라멘토를 향해 떠났다.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집을 나선 일행들의 상기된 얼굴은 환한 아침 햇살 속에서 설렘으로 빛나고 있었다. 차창가로 내다본 9월은 높고도 청명한 하늘에 뭉게구름이 피어 있었고 미풍 속에 물들어가는 나무와 산 그리고 추수를 기다리는 논과 밭이 훤히 보였다. 기차가 터널을 통과하자마자 탁 트인 바다가 보였고 열차는 해안을 따라 한참을 달렸다. 누군가 준비해온 김밥과 추억의 사이다, 삶은 달걀을 먹으며 일행은 이야기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우리들의 이야기가 열차 안에서 웃음으로 한참 무르익을 때 올드 새크라멘토 목적지에 다다랐다.
퇴색된 분위기의 올드 새크라멘토 거리를 천천히 걷다가 꽃나비 나는 델타강의 선창가 식당에 앉아 점심식사를 했다. 열차에서 못다 나눈 이야기가 실타래 풀듯이 다시 이어졌다. 식당을 마주하고 정박돼 있는 새하얀 유람선 한 척, 그리고 강물 위에 떠다니는 돛단배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우리는 레일로드 박물관을 방문하여 한 시대의 역사의 현장, 새크라멘토의 골드러시 흔적을 관람하고 서부영화에 나오는 거리를 걸었다. 서부개척시대의 의상을 빌려 입고 다정히 서서 단체 사진도 찍고 자그마한 상점들을 들러 구경도 하고 거리의 토막 인형극도 재미있게 보았다.
돌아올 때 우리는 3시 55분발 그레이트아메리카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얼마 후 내내 엄숙하던 태양이 하루의 열정을 하늘과 땅, 바다에 쏟아부으며 석양을 만들어냈다. 열차에서 우리는 그 찬란함에 탄성을 지르며 지는 해를 만끽하였다. 어느새 목적지에 이르러 하차하고 가을 나들이로 하루를 마감하려 할 때 전화벨이 울렸다. 후배가 짜장면 먹으러 오라는 전화였다. 집으로 바로 들어갈까 망설이다가 멀지 않은 거리이기에 달려갔다. 이어 걸려온 남편의 전화. 나는 어물거리며 “어, 기차를 놓쳐서 좀 늦는데...”라고 말했다. 반세기 전 경춘선 타고 가평으로 신입생 야외 미팅 갔을 때, 데미안에 나오는 에밀 싱클레어 닮은 파트너랑 더 있고 싶어 부모님께 했던 변명을 똑같이 하고 있었다. 옛일이 하나하나 이 가을밤에 상념으로 쏟아져 내려 청춘의 추억을 곱씹었다.
<강영혜 (아름다운 여인들의 모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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