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잠을 자고 있었다. 연기와 먼지와 안개가 가로막은 하늘은 마치 해가 잠을 자는 듯, 녹슬은 오렌지빛이었다. 누군가는 붉은 행성이라 했고, 누군가는 길고 긴 일식 같다고 했다. 기후 변화와 팬데믹 시대의 불길한 예감이라 했고, 끊이지 않는 선거 유세와 불안한 사회의 그림자라고도 했다. 사람들은 숭숭한 기분을 떨쳐버리지 못한 채, 저마다의 메타포를 읽고 있었다.
모두가 당황스러웠던 이상한 아침. 해가 오면 그 소임이 끝나기로 되어 있던 베이브리지의 만조등도, ‘자연’ 시간의 부재에 어리둥절한 개들도, 알람이 잘못 되었거니 다시 잠자리에 든 사람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안일한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정오를 넘긴 하늘은 어둠만이 짙어갔다. 불과 재와 먼지가 뒤엉킨 메마른 황무지, ‘모르도르’가 이런 모습일까. 햇빛을 가로막은 대기의 장막은 시간의 채색을 달리하며, 톨킨의 허구적 세계를 실사로 보여주고 있었다.
해의 걸음은 정확했다. 한반도의 간절곶같은 남반구의 기즈번을 출발한 태양은, 인도양을 지나 마다가스카르 하늘 꼭대기에서 작열하고, 프로방스의 농가로 기울어진다. 이어 대서양 너머로 돌진해 북대서양의 허브인 포틀랜드의 해안을 밝히고, 약 3시간 뒤 안개에 쌓인 이 도시와 바다를 황금빛으로 물들이며, 골든게이트 현수교에도 집 뒷동산에도 골고루 빛을 실어다 준다. 여느 때와 달리 힘겹게 떨어지는 붉은 빛의 세상을 보며, 처음으로 내일의 태양을 물어 보았다. 하루를 무탈하게 산다는 것이 요즘처럼 와닿을까.
낮의 리듬을 되뇌이며 마을로 내려왔다. 정오의 거리엔 가로등이 켜지고, 불빛 아래 사람들이 분주하다. 그로서리로, 은행으로, 약국으로. 각자의 이유로 왔지만 모두 똑같은 이유로 그곳에 있다. 주어진 하루를 잘 살아야 하는 것. 어스름한 저녁을 배경으로 점심을 먹는 사람도, 정치적 견해와 마스크로 갈라졌던 사람들도, 오늘 만큼은 서로를 바라보며 한가지로 이야기하고 있다. 도로 한쪽에서 분진도 마다 않고 일을 하던 사람들은, 여태 망가진 길을 고치느라 여념이 없다. 이윽고 방벽이 열리고, 가려진 시간 속에서 사람이 손짓을 한다. 노동의 손.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채 연신 땀을 훔쳐 내던 손. 무거운 것을 함께 맞잡던 손을 지나며, 사람이라는 희망을 담는다. 부디 저 모든 손이 무탈하기를.
<신정은 (SF한문협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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