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동네 올림픽 수영장에 수영을 배우러 다녔다. 잘하지는 못해도 물놀이가 좋아 재미있게 하고 있었는데, 그때 수영 강사가 어린 학생에게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하는 말을 나에게 했었다. “너같이 못하는 애는 처음 봤다” 그 말이 너무 충격적이라 나는 지금도 내가 혹시 잘못 들은 건 아닐까 종종 생각한다. 어쨌든 단체 교습이라 몇 달간 계속 진도를 나가 평형까지 배우고 그만두었으나, 영법 중 어느 하나 숨쉬기도 자세도 잘 하지 못했다. 그후로 수영할 기회가 거의 없다가 대학 때 체육 수업에서 나는 재도전하는 마음으로 수영을 선택했다. 초보자 그룹은 한학기 동안 배운 자유형으로 25미터 레인을 한바퀴 도는 게 기말시험이었다. 그때도 엉성한 자세와 호흡이 힘들어 새파랗게 질린 상태로 억지로 완주해 학점을 따기는 했으나 누가 수영할 줄 아냐고 물어보면 못한다고 대답하곤 했다.
몇 년 전 동부를 떠나 서부로 이주할 때 나는 연구에 대해 지치고 의지나 용기가 많이 사그라진 상태였다. 그때 나는 이상하게 수영이 너무 하고 싶었다. 특히 내가 가장 못하는 자유형이 그렇게 고팠다. 그래서 다시 수영장을 찾았다. 처음에는 그루폰 할인을 이용해서 이 학원 저 학원에 한달씩 수영 레슨을 저렴하게 받으러 다녔다. 허리춤밖에 안되는 물에서 뜨지 못해 락스향 물씬한 물을 한 바가지씩 먹었다. 이후에는 레슨보다 연습이 중요하구나 싶어 동네 피트니스센터에 등록해서 바빠도 일주일에 한두번은 혼자 수영하러 다녔다. 동네 피트니스 수영장에는 한 번도 안 쉬고 백 바퀴씩 도는 고수들이 즐비한데, 그들에게 오며가며 한마디씩 노하우를 전수받기도 하고 그걸 몇 주 동안 혼자 연습해 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의 자유형은 계단식 성장을 했고, 서서히 물 속에서의 자신감과 체력이 붙으면서 다른 영법도 예전에 배웠던 것들이 기억나고 새롭게 몸으로 깨달아졌다. 어릴 때 강사가 혀를 내두르도록 희대의 재능 없는 학생이었던 나에게 몇 십년 후 수영은 가장 좋아하고 즐겨하는 운동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수영은 그걸 넘어서 나에게 연구도 꾸준히 노력하면 된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어려운 연구도 수영처럼 꾸역꾸역 락스물 먹어가며 꾸준히 하다보면 근육이 키워지고 갑자기 전구가 켜지는 순간이 올 거라고, 포기만 하지 말라고. 오늘도 물을 가르며 새로운 위로와 힘을 얻는다.
<장희은(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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