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퓰리처상 수상자 강형원 기자의 한민족의 찬란한 문화유산
▶ (52) 증도가자(譄道歌字) 금속활자

임진강에서 서울보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개성 만월대에서 출토된 고려 금속활자 증도가자’(證道歌字) 금속활자는 1232년 이전에 금속활자로 찍은 책 증도가(남명천화상송증도가 南明泉和尙頌證道歌) 서체 크기와 일치한다. [Photo ⓒ 2021 Hyungwon Kang]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고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로는 ‘덕수4462’로 이름지어놓은 산덮을 복(覆) 자 고려시대 금속활자가 있다. 13세기 초에 개경에서 금속활자로 인쇄된 증도가(證道歌) 활자 서체와 일치하는 금속활자 ‘증도가자’(證道歌字)가 북한이 어려운 시기에 한국으로 들어왔다. [Photo ⓒ 2021 Hyungwon Kang]

세계적인 직지와 고려금속활자 연구가 남권희 교수가 개성 만월대에서 출토된 증도가자’(證道歌字) 금속활자를 보여준다. 학자들의 연구를 뒷받침 못하는 대한민국의 학술행정 운영을 과도기라고들 하는데, 한국에서 개성 만월대에서 출토된 증도가자 금속활자를 인정을 전문가 의견대로 따르지 않을 때, 한국에서 97점의 증도가자 활자가 중화인민공화국으로 재유입 되면서, 송/원나라 때 금속활자라고 주장하는 논문들이 중국에서 나왔다. [Photo ⓒ 2021 Hyungwon Kang]

임진강에서 서울보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개성 만월대에서 출토된 고려 금속활자 증도가자’(證道歌字) 금속활자는 1232년에 이전에 금속활자로 찍은 책 증도가(남명천화상송증도가 南明泉和尙頌證道歌) 서체 크기와 일치한다. [Photo ⓒ 2021 Hyungwon Kang]

고려 만월대 금속활자 증도가자 옆이 모래 주조로 만든 후 다듬은 흔적이 있다.
[Photo ⓒ 2021 Hyungwon Kang]

현존하는 증도가의 활자 서체와 일치하는 증도가자’(證道歌字) 금속활자 3D 복제품들. [Photo ⓒ 2021 Hyungwon Kang]

1377년 충청도 청주의 흥덕사에서 인쇄한 직지심경(直指心經). 불조직지심체요절 또는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로 불리는 직지의 표지에는 프랑스어로 1377년 최초 금속활자 인쇄라고 쓰여 있다. [Photo ⓒ 2021 Hyungwon Kang]

1377년 인쇄된 직지심경(直指心經)과 1239년에 원래 금속활자로 찍은 책 증도가를 목판 인쇄로 판각하여 다시 찍어낸 책. [Photo ⓒ 2021 Hyungwon Kang]

직지심경에는 직지를 시주한 묘덕 이라는 비구니 승의 이름이 하편 책 마지막 페이지에 기록되어 있다. [Photo ⓒ 2021 Hyungwon Kang]

1377년에 인쇄한 직지에는 같은 한자 글자가 서로 다르게 인쇄되어 있다. 인쇄된 크기가 일정치 못한 한자 서체는 흥덕사 금속활자가 중앙(고려수도 개경)에서 간행되었던 같은 고려시대 증도가 금속활자에 비해서 인쇄된 크기가 일정치 못한, 한자서체의 완성도가 부족했던 금속활자 인쇄물이었다. [Photo ⓒ 2021 Hyungwon Kang]

국가 보물 지정을 기다리는 증도가 (남명천화상송증도가 南明泉和尙頌證道歌)는 전형적인 고려시대 제본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증도가에 인쇄된 한자글꼴과 개성 만월대에서 출토된 고려 금속활자 증도가자’(證道歌字) 금속활자와 일치한다. 대한민국에는 지금까지 4권의 증도가 책이 발견되었다. [Photo ⓒ 2021 Hyungwon Kang]

‘흥덕사’가 새겨진 승려의 공양그릇(밥그릇) 발우. 이 발우에는 1050년 ‘발우 하나를 만드는데 들어간 구리가 2근6량이다’라고 새겨져 있다. [Photo ⓒ 2021 Hyungwon Kang]
인류 역사에서 책을 인쇄하기 시작하면서 지식의 공유가 가능했고, 인류의 기술과 문명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했다. 전 세계에서 금속활자로 최초로 책을 인쇄한 문명국인 한국인들의 금속활자 인쇄 문화는 1220년대 고려시대로 올라간다.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고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로는 ‘덕수4462’로 이름지어 놓은 산덮을 복(覆) 자 고려시대 금속활자가 있다.
황제가 살던 경기도 개성에서 출토된 금속활자 ‘복’자는 1913년 10월7일 아카보시 사사치라는 일본인이 그 당시 덕수궁미술관(조선총독부 박물관)에 10원 받고 팔았다는 기록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남아있다.
황제국이었던 고려(高麗)의 황제(黃帝)가 살던 수도 개경(開京), 오늘날 개성(開城)의 황성터 만월대(滿月臺)를 일제강점기 때 망국의 서러움을 표현하는 ‘황성옛터’(왕평(본명 이응호) 작사, 전수린 작곡) 노래에서 황제가 살던 황성(皇城)이라고 표현했을 때 조선총독부는 바로 금지곡으로 지정하였다.
개경(開京)의 열릴 개(開)는 전 우주를 향해서 열려있는 제국의 수도라는 의미라고 우리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 도올 김용옥(金容沃)은 말한다.
고려가 몽고와 전쟁 중 수도를 강화도로 옮긴 후, 1232년 강화천도(江華遷都)때 고려시대 무신정권의 실세였던 최이(崔怡, 1166-1249)의 명령으로 기해년 1239년에 금속활자로 찍은 책 증도가(남명천화상송증도가 南明泉和尙頌證道歌) 이전 금속활자본(주자본 鑄字本)을 목판인쇄로 판각하여 다시 찍어낸 책을 보면 금속활자의 서체 크기가 크고 작음이 없는 매우 보기 좋은 서체의 글꼴로 인쇄되어 있다.
13세기 초에 개경에서 금속활자본 증도가(證道歌)가 이미 인쇄되어 있었던 것을 보더라도 1232년 이전에 고려 개경의 금속활자 인쇄문화는 이미 정착되어있었던 것이다.
현존하는 증도가의 활자 서체와 일치하는 ‘증도가자’(證道歌字) 금속활자가 북한이 어려운 시기에 한국으로 수백점이 들어오게 된다.
임진강에서 서울보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개성 만월대에서 출토된 고려 금속활자 증도가자’(證道歌字)가 아이러니칼하게도 고대 고려 영토였던 동북삼성출신 주중동포(조선족)를 통해서 많이 유출되는 북한의 문화재 중 일부로 한국에 2000년대 초반에 도착했을 때,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직지와 고려금속활자 연구 분야에서 가장 해박한 경북대학교 남권희 교수가 그 금속활자 진위(眞僞)를 가리게 되었다.
북한의 경제사정이 나빠지면서 2000년도 중반에 주중동포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인 직지심경(直指心經, 1377년 충청도 청주의 흥덕사 인쇄)의 인류역사적 가치를 전시해놓은 청주고인쇄박물관에 개성 만월대에서 출토된 고려 금속활자 증도가자를 어렵사리 가지고 왔을 때, 금속활자에는 획 사이에 끼어있는 흙이 아직도 붙어있는 상태였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 직지심경(直指心經)을 직접 장시간 열람하고 정밀 분석했던 남 교수는 지난 수년 동안 여러 중간거래인을 통해서 한국으로 들어온 300점이 넘는 개성 만월대 금속활자 및 증도가자를 그동안 모든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 탄소연대측정, 성분분석, 서체분석을 정밀 연구했다.
방사성탄소 연대측정 방법으로 금속활자 획 사이에 끼어있는 유전자 오염이 없는 흙밑의 먹가루를 한국지질자원연구원과 일본 팔레오라보(Paleolabo) 연구소에서 검사한 결과 95.4% 정확성으로 1065-1155년, 그리고 969-1025년으로 각각 고려시대 인쇄했던 먹 흔적을 확인하였다. 바야흐로 13세기 초의 고려금속활자를 확인한 것이다. 그동안 영어문화권에서 잘못 알려진, 1455년 서양 최초로 금속활자 인쇄 발명술의 혁신을 가져왔던 독일의 요한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 1397~1468) 보다 무려 225여년 이전에 고려황제국에는 금속활자 인쇄문화가 이미 융성했던 것이다
“중앙국립박물관 소장 ‘덕수 4462’ 복(覆) 자 금속활자와 ‘증도가자’(證道歌字) 금속활자는 형태(모양)적으로 뒤에 홈이 파여 있고 같습니다” 라고 남권희 교수는 말한다.
한국과 일본에는 북한에서 빠져나온 유물을 거래하는 중간거래상이 서너 루트가 있는데, 2005-2010년은 북한이 유난히 어려운 시기로, 북한의 박물관 도록에 있는 물건조차도 주문하면 가져다줄 정도로 고려 도자기 같은 엄청나게 많은 유물들이 바깥으로 유출되던 때였다.
앞서 1990년도에 대구에서 직지심경(直指心經)과 동일한 금속활자로 인쇄한 ‘자비도량참법’ 책을 발견했던 남 교수는 1377년에 직지를 인쇄한 충청도 청주의 흥덕사 금속활자는 중앙(고려 수도 개경)에서 간행되었던 같은 고려시대 증도가 금속활자에 비해서 “완성도가 부족했던 금속활자 인쇄물이었다” 고 말하며 직지에 인쇄된 크기가 일정치 못한 한자 서체를 지적한다.
프랑스 국립박물관에 있는 ‘직지’는 원래 앞뒤 표지와 첫 페이지가 없었다. 사찰에서 부처님을 봉안할 때 부처님 속에 부처님 사리를 비롯하여 많은 보물을 넣어두는데, 두터운 앞뒤 표지를 뜯어내고 둘둘 말아서 목각 불상 속에 오랫동안 보관한 흔적이 책에 스며든 송진 자국으로 확인된다.
원래 고려시대 책 제본 방식은 흔히 보이는 책을 다섯 군데 구멍 뚫어서 표지와 함께 책을 제본하는 조선시대 방식과는 달리, 책 내용에 구멍을 여러 개 뚫고 종이 심지를 채워서 위아래를 두들겨 종이심지를 고정시킨 후 앞뒤 책표지를 실로 묶지 않고 풀로 붙인다.
하지만 프랑스 국립박물관에 있는 ‘직지’는 조선시대 방식으로 표지까지 구멍을 뚫어서 제본해 놨다. 1377년에 인쇄한 종이를 보호하기 위해 한지와 배접해서 책을 복원해놨는데 책의 위아래 여백을 고려시대 책처럼 충분히 남겨놓지 않고 짧게 잘랐다.
2027년에 ‘직지에서 구텐베르크’라는 주제로 ‘인류의 인쇄 역사 650년’을 다양한 전시 프로젝트로 계획하는 미국 유타대학 랜디 실버맨(Randy Silverman , Head of Preservation, Utah University Library)은 “인류의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를 성취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한 한국인들을 인정하는 것이 목표” 라고 말한다.
*퓰리처상 수상자 강형원 기자의 우리·문화·역사 Visual History & Culture of Korea 전체 프로젝트 모음은 다음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www.kang.org/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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