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국으로부터 우리집 수도에 문제가 있다고 이메일이 왔다. 부랴부랴 집으로 달려가 살펴보니 개러지(garage)가 축축했다. 스프링쿨러 조절기 하나가 완전히 부서져 한동안 물이 새었나 보다. 다행히도 누군가가 정원으로 가는 수도 밸브를 잠가 놓아 더 물이 새지는 않았다. 이 집 저 집 찾아가 물어볼까 하던 중, 개를 워킹 시키던 한 부인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너의 집에서 물이 솟구치는데 벨을 눌러도 반응이 없어 내 남편이 수도 밸브를 잠갔어. 어떻게 조치는 취했니?” 나는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조그만 선물을 하려 했지만, 그녀는 한사코 받지 않았다. 그런 그녀를 보니 아직도 잊지 못하는 이십여 년 전 그 일이 떠올랐다.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우리 가족은 자동차로 서부 여행을 떠났다. 땅거미가 질 무렵, 어느 지방 국도로 접어들었을 때, 눈이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경험이 없어 지도만 보고 지름길로 접어든 것이 시골길이었다. 조금씩 길 위에 눈이 쌓여 가자 남편은 도로 상태를 본다며 차를 갓길에 세웠다. 갓길로 들어서자 자동차는 쭉 미끄러지더니 산자락을 들이받으며 눈 속에 처박혔다. 진흙땅인 갓길은 살짝 눈까지 쌓여 엄청 미끄러웠다. 시동을 걸고 아무리 후진을 해봐도 바퀴는 겉돌 뿐이었다. 큰 도시도 아니고 조그만 시골 국도변에서 날은 저물어 오고 정말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때, 멀리서 트럭 한 대가 다가왔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며 도움을 청하자 트럭 운전자는 오던 길을 되돌려 집으로 돌아가 노끈을 준비해 왔다. 노끈으로 두 차를 연결하고 가속 페달을 몇 차례 밟자 마침내 우리 차가 도로 위로 올라섰다. 꼼짝없이 차 속에서 하룻밤을 보낼 뻔했는데 생면부지의 그분 덕분에 위기를 모면했다. 여러 번 감사 인사를 하고 사례를 하려 했지만, 그는 끝끝내 거절했다. “내 작은 도움이 당신들을 곤경에서 구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진정 고마우면 당신도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만났을 때, 대가 없이 도와주세요.” 그는 가져왔던 노끈까지 우리에게 주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후로 이제껏 이 일에 대한 pay forward it(다음 사람에게 베풀기)도 못하고 살았는데, 마주친 적 한번 없는 이웃에게 또 신세를 졌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누군가를 돕는 선행 릴레이, 이제부터라도 몸에 익히도록 해야겠다.
<김희원(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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