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력이 많이 필요한 동물 실험실에는 보통 감독 하에 일하는 테크니션들이 여럿 있다. 대부분 학부 졸업생으로 연구 경력을 쌓아 의대 MD 과정이나 연구 중심 Ph.D 과정에 진학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전에 같이 일했던 테크니션 한명이 이번에 동부의 유명한 의대 MD 과정에 입학한다며 추천서 써줘서 고맙다고 연락이 왔다. 이 친구를 생각하면 짠한 마음이 있다. 손재주가 좋고 맡긴 일은 깔끔하게 잘하는데 불성실해서 여러 이유를 대며 갑자기 결근하는 날이 잦다가 결국에는 해고되었다. 당시 나는 내가 멘토링을 좀더 잘 했으면 좋은 인력으로 쓸 수 있지 않았을까 스스로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고, 사실 일을 잘하는 똘똘한 친구라 추천하면서 칭찬할 말이 많았다.
최근까지 같이 일했던 테크니션 한명은 그 반대였다. 학부생이었는데 일을 야무지게 못하고 같은 실수를 계속 반복하는 등 못미더워서 매번 내가 점검해야 했다. 그런데 정말 착하고 성실해서, 자기가 뭔가 잘못한 게 있으면 자발적으로 주말에 와서 그 실험을 다시 한다던지 해서 메꾸려고 했고, 시험, 병가 등 개인 사정으로 실험을 취소한 일이 2년 넘게 단 한번도 없었다. 그래서 이 친구에겐 고마운 마음이 많다. 이번에 의대 추천서를 쓰면서 너무도 잘 써주고 싶은데 성실한 것 외에는 별로 쓸 게 없어서 최대한 일화를 짜내어 좋은 추천서를 만드느라 애먹었었다.
커리어의 과도기에서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 준비하고 노력하는 테크니션들을 보며 나는 과거의 나를 투영하기도 하고 현재의 나를 돌아보기도 한다. 위에 이리저리 평가를 하긴 했지만 그래도 어리숙하기 짝이 없던 그 나이대의 나를 기억해보면 참으로 부끄럽기에, 너희들이 훨씬 낫단다, 하고 말해주고 싶다. 한주의 시간을 쪼개서 수업듣고 공부하고 봉사 다니고 실험실에서 일하고 하는 부지런한 모습에 나도 더 정신차려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좋은 멘토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끊임없이 고민하게 된다. 자기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이라고 확신을 주고, 일의 결과물뿐만이 아니라 과정에서도 즐거움을 느끼도록 어떻게 유도할 수 있을까. 내가 과학에 대해 느끼는 재미와 흥분을 어떻게 더 공유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앞으로 만날 테크니션들에게는 더 의미있는 연구 경험을 주고 더 좋은 추천서를 써줄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장희은(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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