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 외교전문지 분석 …금융·공급망 파탄에 민생고
▶ “제재대상 집권층 타격 미미… 부작용이 효과 능가”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의 경제 제재가 대상국에 심한 인플레이션을 불러 애초 목적과 관계없는 민생고만 부추긴다는 비판적 분석이 나왔다.
미국 국제관계 전문잡지 포린어페어스는 서방이 한 자릿수의 인플레이션(지속적 물가상승)에 경악하지만 이란, 북한, 시리아, 베네수엘라 등의 두 자릿수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새 발의 피라며 19일 이 같은 연구결과를 실었다.
이 매체는 서방국의 경제제재는 ▲ 재화·용역을 결제하는 금융경로 차단 ▲ 공급업체 감소 따른 공급사슬 파탄 ▲ 수입 의존도를 낮출 기간시설 구축을 위한 장기투자 저해 등 3가지 경로로 인플레이션을 부추긴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인플레이션의 프리즘을 통해 볼 때 제재, 특히 금융제재의 해악은 제재 대상국에 놀랍게도 공통으로 나타난다"며 "이는 생필품 부족이 제재의 간접 결과라기보다 직접 효과라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포린어페어스는 현재 서방의 제재를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목적으로 설계된 경제적 무기'라고 정의하며 표적이 된 국가들에서 나타난 실제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정부는 한때 이란의 보유외환 10%를 봉쇄하고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란 단체뿐만 아니라 이들과 거래하는 외국 기업까지 제재하기로 했다.
이른바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으로 이란을 국제 경제권에서 철저히 고립하려 했다.
이 같은 제재가 부과되자 이란의 통화 가치는 결과적으로 무려 60%나 떨어져 수입품 가격이 치솟았다.
40여년에 걸쳐 미국의 제재를 버텨온 이란은 생필품 생산기반을 다져오긴 했으나 의약품 같은 제조업 부문에서는 여전히 원자재, 중간재를 수입해야 했다.
미국의 제재 때문에 이란과 거래하는 해외 은행이 급감했고 그나마 남은 은행은 많은 수수료를 물려 수입업체의 거래비용을 부풀려 인플레이션을 부추겼다.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세력 탈레반이 작년 8월 집권한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제재에 따른 통화가치 급락, 구매력 약화, 공급망 차질이 이어졌다.
미국 재무부는 90억달러(약 10조7천억원)에 달하는 아프가니스탄 보유외환을 동결했고 국제기구들은 연간 80억달러(약 9조5천억원)에 달하는 개발원조를 보류했다.
결과는 외국자본 탈출, 통화가치 추락, 공급사슬 붕괴, 살인적 인플레이션이었다. 아프간은 수입의존도가 매우 높아 통화가치 하락의 타격이 더 크다. 유엔개발기구(UNDP)는 아프간인 97%가 올해 중반까지 빈곤층으로 전락한다고 관측하기도 했다.
포린어페어스는 레바논, 북한, 시리아, 베네수엘라도 유사한 효과에 타격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금융체계 마비로 식품 같은 재화의 공급까지 차질을 빚어 일반 국민의 삶은 더 어려워졌다고 강조했다.
제재 때문에 더 의존하게 된 소수의 공급업체가 수출을 줄이기라도 하면 인플레이션의 골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포린어페어스는 제재와 인플레이션은 장기적으로 악순환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제재 대상국들이 제재 전부터 저투자, 재정운영 부실 등으로 금융체계와 공급사슬이 취약했으며 제재 부과로 이를 해결할 여력까지 잃었다는 얘기다.
포린어페어스는 "군비확대, 대리세력 지원, 탄압에 필요한 자금이 정부(제재대상 정권)에 들어가지 않도록 막는 방법으로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는 것은 좋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인플레이션 때문에 (제재 대상국의) 정부 예산이 감축된다고 하더라도 그 나라 지도층은 복지 프로그램, 기간시설 투자를 줄이면서 '논란'의 활동을 계속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포린어페어스는 제재 대상국 기득권층은 인플레이션을 통해 재산을 불릴 다른 수법을 찾을 것이며 해외자산을 보유한 경우에 인플레이션은 이들 집단에 오히려 호재라고 설명했다.
포린어페어스는 미국 대외정책 전문가들이 경제제재가 외과 수술하듯 정교하게 아껴서 집행돼야 한다고 지적하지만 현재 서방의 제재는 이런 원칙과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인플레이션을 완화하지 못한다는 점은 제재의 해악이 겉으로 드러나는 이익을 계속해서 능가할 것이라는 말"이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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