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어오자 프로방스(Provence)의 평원이 일제히 물결처럼 퍼지며 술렁인다. 프랑스의 중앙 고원에서 론강(Rhône) 계곡을 따라 부는 미스트랄(mistral)은 기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사람뿐만 아니라 짐승까지 미치게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미스트랄이 대기 속의 오염을 씻어내고, 화사하고 밝은 프로방스의 기후를 만든다. 미친 바람이 불 때마다 새파랗게 질린 하늘은, 금세 말간 얼굴을 드러내며 눈부시게 푸른 이 고장의 빛과 향기가 된다.
프로방스의 미스트랄을 느끼려면 아를(Arles)이 제격이다. 론강 유역에서 다른 바람을 압도하는 미스트랄의 위력은, 아를을 사랑한 화가의 그림에서도 볼 수 있다. 고흐(Vincent van Goch)의 넘실대는 밀밭이나 기이하게 뒤틀린 나무들은 특유의 두터운 붓자국과 함께, 거친 소용돌이 속에서도 영원을 갈구하는 듯 꿈틀거린다.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이 지적하듯, 고흐는 사이프러스가 미스트랄 속에서 독특하게 움직이는 방식을 보았다.
세찬 바람은 지중해 연안의 작은 항구, 세트(Sète)에서 또다시 맹위를 떨친다. 폭풍이 몰아치고 번개가 번쩍이던 끔찍한 밤에 실존적 물음을 마주했던 청년 폴 발레리(Paul Valéry)는, 20년이 지난 후에야 침묵을 깨고 외쳤다. ““바람이 인다, 살려고 애써야 한다.” 시간이 잠든 언덕은 들끓듯이 일어서는 생의 결기와 함께, ‘해변의 묘지’가 되어 우리에게 왔다.
빛과 암흑, 혼란과 평온이라는 두 얼굴을 하고 있는 공기의 움직임은, 그리스 신화의 티폰(Typhon)처럼 대지의 나락을 잡아 흔들기도 하고, 사람에게 동력을 나누기도 한다. 수많은 예술가에게 자유로운 정신의 영감을 주고, 삶의 이유가 된다. 파괴하기도 하고 소생시키기도 하는 바람의 속성은 인간의 삶을 정화하려는 듯 지상에서의 죽음과 부활을 가르친다.
2월이다. 다른 달에 비해 이삼일 모자란 2월은 부족한 달일 수 있겠다. 그러나 부족함을 서로 공감하고 사랑할 수 있다면, 결핍은 모자람이 아니라 영혼이 숨쉬는 넉넉한 여백이 될 것 같다. 부족하고 모자라더라도 가슴엔 사랑이 담겨야겠다. 화가가 열악한 상황에서도 최고의 빛을 찾아내듯이, 빈자리 너머 발견되는 소중한 것에 우리의 마음이 있다.
저 만치에 있는 어린 봄이다. 모든 살아있는 것에 활력을 주는 서풍의 귀환을 위해, 햇살을 마중하는 새순처럼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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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은(SF 한문협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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