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유학하던 유럽의 학교에서 리프레셔 코스(refresher course)를 밟게 되었다. 귀국 전에 한국인 얼굴 생김새에 키가 크고 유럽형 체격을 가진 청년이 우리를 찾아왔다. 한인입양인이라는 그 청년에게 왠지 모르게 금방 정이 갔다. 그는 자기 얼굴을 변형하여 아빠와 엄마 얼굴을 만들어 보고 그리워한다며 낳아주신 부모님을 간절히 만나고 싶어했다. 우리는 한국의 인턴 자리를 알아봤고 그는 곧바로 한국에 왔다. 각고의 노력을 했으나 낳자마자 입양된 아이에게는 아무런 단서도 없었고 친부모와의 상봉 가능성은 남아있지 않았다.
참으로 우연히 대사관 디너 파티에서 정년퇴직한 직원을 만났고 생년월일이 같은 오씨 성을 가진 입양된 아이를 찾아냈다. 아주 조심스럽게 생모에게 연락했다. 이럴 수가! 생부는 건설회사 사장이 되어 있었고, 생모와 다시 만나 가정을 이뤄 부유하게 살고 있었다. 해피엔딩이라며 방송출연 섭외도 받았으나 한국 부모님들은 거절했고 알려지는 걸 원치 않았다. 고등학생 때 만난 이들에게 아이가 생겼지만, 고학력자인 딸의 부모가 딸의 미래를 위해 둘을 갈라놓아 어쩔 수 없이 헤어지게 되었다. 생부는 생모가 몰래 아이를 낳아 입양을 보낸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오군과 친부모는 감격스러운 만남을 가졌다. 그러나 친부모 집으로 거처를 옮긴 오군은 얼마되지 않아 돌연 인턴 일을 중단하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오군의 친부모는 “우리는 너무 좋은데 아이가 시무룩하고 냉정한 것 같다. 목욕탕에 데려가서 등을 밀어주려 해도 피한다”며 “문화의 차이가 크다”고 했다. 오군의 아버지는 최씨였고, 아이를 낳았다는 기록을 남겨놓고 싶지 않아서인지 오씨는 어머니의 성도 아니었다. 특히 아버지는 다 큰 아들을 보고 어쩔 줄 몰라하며 좋아하고 어루만지고 매 순간을 같이하고 싶어했다.
한국을 떠나며 우리를 만난 오군은 “부모님을 찾게 해주어 감사하다”면서 셔츠 위로 뚝뚝 눈물방울을 떨어뜨렸다. 오군은 본국으로 돌아갔고 우리는 그의 양어머니로부터 장문의 편지를 받았다. “한국에 가니 거기에 마미(양어머니)가 있었고 대디가 있었습니다. 나를 안아주고 체온을 느끼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친부모님을 만나서 여한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분들이 내 몸을 만지는 걸 원하지 않아 불편했고, 매일 두 분께 감사하며 미안하고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라며 사랑을 표현할 줄 아는, 이제 진정한 내 아들이 되었다고 전했다. 그리고 오군은 다시 우리를 찾지 않았고 한국에 오지 않았다.
<양벨라(버클리문학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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