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엄마를 방문한 아들과 일주일 넘게 같은 공간에서 지내고 있다. 스물을 넘긴 아들과 예순을 넘긴 엄마가 킹사이즈 침대에서 같은 이불을 덮고 잠을 자는 게 지금 아니면 있을 법한 일인가. 아들 키우는 게 남의 여자 좋은 일 하는 거지 결단코 엄마에게 돌아올 소득은 없다지만, 나는 듬직한 아들을 곁에 두고 있음 자체만으로도 지금 행복하다. 별 수 없다. 엄마는 아들에게 그냥 엎어지는 허깨비와 다름없다.
오랜만에 만난 아들은 머리가 덥수룩하니 제대로 헤어컷을 하지 않아 영 불편한 모습이었다. 맘먹고 머리에 파마를 하고서 맵시나게 잘라줬더니, 이게 웬걸 훌륭한 청년의 모습으로 변했다. 에이, 진작 이리했어야 했는데. 잘난 얼굴을 이리저리 바라보며 흐뭇해 하는 난 영락없는 아들 바보다. 때론 미국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과의 문화 차이로 인해 가끔 마음에 섭섭함이 솟지만 꼬맹이가 이만큼 커다란 덩치로 변한 것이 신기하고 고마울 따름. 어눌한 한국말을 하면서 부끄러워하는 것까지 그냥 다 좋다.
사실 아들이 아빠와 가까우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이 두 남자는 자주 부딪히며 으르렁대서 엄마인 내가 불편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국적 사고방식의 아빠와 미국적 사고방식의 아들이 마음을 모으면 큰 힘을 발할텐데 왜 그게 어려운지. 큰 목소리로 명령하듯 얘기하는 아빠를 향해 다소곳이 따르는 게 어려운 아들이나, 그의 태도를 문제삼아 못마땅함을 감추지 않고 뱉어내는 아빠나 오십보 백보 아닐지. 난 그래도 아빠가 져주는 게 낫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아들의 인생은 이제 부모에게 속한 것이 아니고, 그 자신이 일궈내야 하는 책임과 권리이다. 난 곁에서 조심스럽게 바라보며, 도움이 필요할 때 손내밀어 잡아줄 준비만 하고 있으면 된다.
어찌됐던간에 아들은 일주일간 복지센터의 할머니 할아버지들과의 시간에 열심히 참여하면서 잘 지냈다. 어르신들이 게임을 할 때 곁에서 돕는 모습이나, 커다란 몸집으로 체조 프로그램을 열심히 따라하며 땀을 뻘뻘 흘리는 것도 즐거운 광경이었다. 젊은 청년의 등장은 노인들 분위기를 새롭게 하기 마련이고, 곁에서 나 역시 덩달아 신이 났음은 물론이다. 트로트 음악에 맞춰 라인댄스를 어기적거리며 따라하는 동안 웃음이 터져나오고, 하나 둘 셋 박자에 맞춰 소리를 외치는 동안 질척거리던 마음의 응어리가 해소되지 않았을까. 누구나 노인이 되는 인생의 길을 미리 바라보면서 정갈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아들에게 주어졌기를 바랄 뿐이다.
<스테이시 김(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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