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말, 갑자기 들려온 반클라이번 피아노 콩쿠르 우승자가 18세 최연소 한국인이라는 뉴스에 난 그닥 놀라지 않았다. 한국은 엄청난 실력을 가진 음악도가 많아서 국제 콩쿠르에 우승했다는 소식은 종종 들리지만 잠깐 주목을 받다가 일상의 뉴스거리에 곧 묻히는 게 일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인이 보내온 유튜브 영상을 통해 그의 연주를 듣고, 난 지난 며칠간 거의 두 시간 이상을 매일 그의 피아노 연주에 빠져 있다.
18세라면 본인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감정적 소용돌이에 아직 휘말려 있을 법한데, 그의 연주자세를 보면 음악에 완전히 몰입된 성숙한 이미지여서 놀랍기만 하다. 오케스트라 협연시 자신의 연주 중간에 관현악기 연주자들을 바라보며 음악의 흐름을 같이 호흡하고, 오른손이 연주하는 사이 왼손은 선율에 따르는 손짓으로 감정을 함께 다듬고, 강렬한 속도로 양손 모든 손가락을 휘날리는 연주에서는 온 몸의 무게를 피아노 건반에 실어 폭포수처럼 찬란한 빛을 뿌린다. 모짜르트는 아주 귀엽고 또렷하고 정직하게, 베토벤은 깊은 감정을 실어 얼굴 표정마저 진지하게, 라흐마니노프는 단순 명료로부터 화려함에 이르는 모든 순간을 절제로 빚어낸 절정으로 음악을 그려낸다. 아, 난 정말 말을 잃었다.
깊이 있는 음악을 공유하고 싶어서 콩쿠르에 임했다는 말은 그의 음악처럼 담백하다. 이번 콩쿠르에서 우승을 한 번도 예상해본 적 없고, 우승자로 호명되었을 때 기뻤다기보다 무거운 마음이 들었다는 것이 놀랍다. 쏟아지는 관심과 찬사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음악철학을 지키려는 모습은 아름답다 못해 존경스럽다. 어떤 곡이던 똑같은 마음가짐으로 연주하고자 하지만, 듣는 사람에 따라 달리 해석되는 것이 더 좋다는 말에서 그의 순수한 음악에의 열정과 겸손이 느껴졌다. 그는 무대를 마친 뒤에 만족을 느끼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며 앞으로 더 계속 연습하고 정진하겠노라 말한다. 18살 젊은 음악가는 지금 마치 인생의 고뇌를 이겨낸 성숙한 인간의 모습으로 비춰진다. 오랜 기간의 자기 단련과 절제없이는 가능하지 않을 모습 말이다.
인생살이 어떻게 한결같을 수 있겠나. 굴곡이 있게 마련이고 나락에도 떨어질 수 있음 아닌가. 연못에 머물건, 강물로 나아가건, 혹은 넓은 바다로 질주하건, 본인의 템포대로 여유를 가지고 차분하게 인생을 사는 것이 비단 음악을 하는 사람뿐 아니라 우리 평범한 인생을 사는 사람에게도 필요한 자세일 듯하다. 피아니스트 임윤찬. 그의 음악을 통한 삶의 자세가 귀하다.
<스테이시 김(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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